“백만장자 아닌 백만명이 신는 구두 철학 먹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서울 압구정동의 구두 편집매장 ‘워킹 온 더 클라우드’에서 독일 컴포트 슈즈 브랜드 ‘가버’의 아킴 가버 사장이 자기 회사 여성 구두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하블로바 하벨 체코 대통령 부인이 신는 구두. 독일 루프트한자를 비롯해 핀란드 핀에어와 요르단 항공 승무원들의 업무용 신발.

 유럽 최대 컴포트 슈즈 브랜드인 독일 ‘가버(Gabor)’다.

 이 회사는 요즘 경기 침체에도 매년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억6300만 유로(약 52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창업자인 요아킴 가버의 아들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아킴 가버(45) 사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장 비결에 대해 “백만장자가 아닌 100만 명이 신을 수 있는 구두를 만든다는 그간의 철학이 먹힌 것”이라고 말했다. 가버 사장은 “경기 침체기엔 고객들이 명품보다 ‘품질이 명품 같은 제품’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버는 신발 공정의 80%를 수작업으로 20년 넘게 근무한 장인들이 만들지만 가격대는 20만원대(유럽 현지 기준)”라고 소개했다. 한 켤레 제작에 140회의 복잡한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가버 사장은 “허리띠·가방·지갑 등으로 구색을 넓히는 다른 브랜드와는 달리 구두 만드는 것 외에는 일절 한눈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구두 장인은 가장 잘하는 신발에만 집중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새기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가버 사장은 2005년 은퇴한 요아킴 전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메르켈 총리의 애용품이지만 정작 가버 사장은 “유명인을 내세우는 마케팅보다 품질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느린 마케팅’이 가버의 노선”이라고 설명했다. 구두 브랜드로는 드물게 매년 매출의 2~3%인 850만 유로(약 130억원)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도 그래서다.

 가버에 따르면 구두 윤곽을 잡아주는 틀인 ‘라스트(last)’가 구두의 편안함과 모양을 좌우한다. 그래서 가버는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전 세계 2만5000명의 발 모양을 측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새 라스트를 만든다. 1호 라스트는 회사의 보물로 본사 독일 로젠하임의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가버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유럽 브랜드로는 드물게 발 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동양인을 위해 라스트를 따로 만들었다. 중국에 170개, 일본에 25개 매장을 두고 있다. 국내엔 2006년 진출해 15개 매장이 있다.

 가버 사장은 “지역 문화에 맞춘 유통 방식을 적극 도입하는 정책을 쓴다”며 “글로벌 최초로 한국에서 홈쇼핑 판매를 한 것도 지역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롯데홈쇼핑에서 20분 만에 20억원의 매출을 올려 독일 본사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국내 홈쇼핑에서의 성공이 토대가 돼 독일에서도 홈쇼핑 판매를 추진 중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가버 사장은 “컴포트 슈즈는 패션과 동시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웰빙 선호’ 경향과 잘 맞아떨어진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버(Gabor)는

● 본사 : 독일 로젠하임

● 설립 : 1949년

● 제품 : 구두·부츠·샌들 등

● 매출 : 2012년 상반기 1억8800만 유로(약2700억원)

● 국내 매장 : 압구정동 워킹온더클라우드(컴포트슈즈 편집매장),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 신세계 영등포점 등 15곳

● 글로벌 매장 : 미국·영국·중국 등 450여 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