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을 남자 그리고 소년...이 시대 여심 휘어잡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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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머리는 “말도 안 돼!”라고 하는데 가슴은 “말이 좀 안 되면 어때?”라고 속삭이는 걸 이길 수가 없다. 이건 다 이 배우 때문이다. KBS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와 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27). 그에겐 ‘이런 얘기가 말이 되느냐’는 문제제기 자체를 부질없게 하는 마성이 있다.

최근 종영한 ‘착한 남자’는 억지 설정을 남발했다. 극 전개가 교착에 빠질 때마다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증 등이 쓰였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20% 가깝게 치솟았다. 첫사랑 누나(박시연)를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쓴 뒤 배신당해 복수의 화신이 된 남자를 송중기가 연기했기 때문이다. 협찬사가 치킨 브랜드라서 애초 드라마 제목이 치킨을 연상시키는 ‘차칸 남자’였고, 남자의 극중 이름(마루)도 브랜드명을 그대로 따왔다는 우스꽝스러움쯤은 ‘우리 중기’를 외치는 이들에겐 그저 사소할 뿐이었다.

‘늑대소년’도 다르지 않다. 1960년대 한 시골 마을을 무대로 몸이 아픈 소녀(박보영)를 무려 47년간 기다리는 늑대소년 철수. 그의 맹목에 가까운 순수함에 600만 명에 육박하는 넘는 관객이 열광했다. ‘건축학개론’이 세운 멜로영화 최고 기록은 이미 깼고, 700만 명까지 넘보는 참이다. 이 역시 정교한 맛은 떨어진다. 늑대소년이 정부의 비밀병기로 개발됐다는 설정은 어딘지 허술하다. 고증에도 크게 신경쓴 눈치가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늑대 변신 장면은 좋게 봐주려고 해도 어색하다.

그래도 객석은 눈물바다다. 수능을 마친 여학생부터 40대 중년 여성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녀의 “기다려”, 늑대소년의 “가지 마”에 눈물 닦기 바쁘다. ‘우리 중기’의 힘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두 작품에 대해 “꽃미남 외모에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 줄 듯한 순수한 남성성의 결합체를 내세운 극강의 판타지”라고 평했다. 잘생기고 전도유망한 의대생이 오로지 한 여자를 위해 대신 감옥살이를 하는 판타지, 일흔이 내일 모레인 호호 할머니를 ‘방부제 미모’의 늑대소년이 껴안으며 “하나도 변한 것 없이 예뻐요”라고 말하는 판타지 말이다.

정씨는 “소위 ‘초식남’ 현상 등 오늘날 남자의 위기가 TV와 스크린에 이처럼 극도의 비현실적인 판타지 멜로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남성들이 이 두 작품에 ‘손발이 오그라들어 못 견디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이렇게 보면 이해도 된다. 어쨌든 이런 극강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데는 극강의 외모가 뒷받침돼야 했고, 송중기는 대체 불가능한 카드임을 입증했다.

이런 절대적 지지를 받는 외모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게 데뷔 5년째에 접어든 송중기의 향후 행보다. 가령 ‘완벽 외모’ 분야에서 한 세대 앞선 장동건처럼 그 역시 스스로를 외모 콤플렉스에 가두는 건 아닐까. 아직까지 송중기는 꽃미남 이미지가 노골적으로 소비되는 데 크게 개의치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경력 관리를 착실하게 하고 있는 인상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선 세종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고, 한예슬과 호흡을 맞춘 영화 ‘티끌 모아 로맨스’에선 궁상에 찌든 청년 백수 역으로 코미디에도 소질이 없지 않음을 보여줬다. 배역 비중이 작거나(‘뿌리깊은 나무’) 저예산이거나(‘티끌 모아 로맨스’) 가리지 않고 한 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 “작품으로 돈 벌 생각 없다. 돈은 CF로 벌면 된다”는 자신감. 이런 요소야말로 여느 꽃미남 스타들과 송중기를 구분지을 성장동력인지 모른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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