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윤후명 '달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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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향기' ( '21세기문학' 2000년 겨울호) 역시 윤후명씨 소설을 어느 정도 읽어본 이라면 단박 알아차릴만한 윤후명적 체취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다.

그를 두고, 특히 작품집 『여우사냥』 이후 흔히 이야기되는, 소설적 이야기의 흥미보다 시적 관념 독백이 주조음을 이룬다거나, 그런 시적 이미지의 상징을 가지고 일인칭 화자 '나' 의 연상작용을 통해 줄거리를 전개해 나간다거나,

시적 여운을 산문화하여 그로부터 울림을 빚어내는 심미성에 그의 문학적 특징이 있다는 등의 평가는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아니 그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매력이기도 하다. 비슷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는 -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식상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 그것이야말로 윤후명 소설의 한 특징인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 내부에서보다는 다른 여러 작가들의 작품과 뒤섞여져 있을 때 그런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누와라엘리야의 산굽이에서 한국의 신갈나무 숲을 생각한다" 라는 첫 문장부터가 그렇다.

그리고 뒤 이어지는 '월식' 에 대한 이야기, 그때 보게 된 '눈썹 같은 형상' 은 뒤이어 한국의 신갈나무 숲에서 본 한 여인의 눈썹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지면서 작중화자의 존재론적 삶의 미묘한 그림자와 고독감의 어슬렁거림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소설 역시 최근에 그가 즐겨 쓰는 여행소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이 '꿈 사냥꾼' 8번째이다.

어쨌든 말 그대로 '여행' 소설은 풍경의 미학이 무엇보다 우선되고 그에따라 영상적 이미지에 중점을 두는 서술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어떤 의미의 부적을 만드냐가 문제인데, 윤후명은 극히 개인적인 고립화된 인간의 내면을 주입시킨다. 그리고 '존재론적 물음' 이 풍경에서 얻은 비유적 대상 속에서 시적인 문양으로 가지를 뻗어나간다.

그의 소설에서 '나' 의 사회적 삶은 언제나 장막이 쳐저 있다.

이 소설에 그려진 '나의' 정보란 고작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힘겹게 힘겹게 피해 다니던 몸이었고 게다가 그 도피를 도와주던 여자와의 이별이라는 사건이 겹쳐졌었다고 한두 마디로 요약되겠지만, 그것은 실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토록 오랜 도피 끝에 다다른 곳이 벼랑 끝 나락이었다" 이다.

이처럼 단지 특정한 상황만을 예감케 해주는, 더구나 정보의 부족이 주는 갈증 탓에 이런저런 비밀이 가중되고 그것이 오히려 독자를 흡인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말하자면 그 자체가 작가의 전략인 셈이다.

이렇듯 존재의 사회성에 대한 배제는 자연스럽게 행위의 서사와는 길이 다른, 의식의 연상에 따라 수집한 파편화된 이미지로 병풍을 만들거나 기억의 사진첩을 엮는, 그리하여 한 그루의 나무가 보여주는 사계의 운명적 존재처럼 변하지 않으면서 계절마다 전연 질감이 다른 외양을 드러내듯 미문으로 감싸안은 초현실적 최면술로 존재의 동굴벽화를 그려나간 소설인 것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비교적 선명한 논리로 초점화되지 않는 것도 그때문일 것인데, 아마도 그것을 두고 어떤 이는 향기나 여운을 말할테고, 또 어떤 이는 그래서 뭐란 말이냐 하는 오리무중의 허탈감을 이야기하기도 할 것이다.

가령 이야기의 핵이 되는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과 하룻밤의 정사, 그리고 오랜 시간 뒤에 다시 우연히 찾아든 재회의 장면 등은 세속과 탈속이라는 종교적 배후까지 거느리고 있기에 그 자체로 선뜻 의미의 맥락을 감히 만들지 못한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비의(秘擬) ' 란 말로 은유할 수밖에 없을터, 그것이 윤후명의 소설이다.

임규찬 <문학평론가.성공회대 교수>

◇ 윤후명 약력

▶1946년 강원도 강릉 출생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등단

▶소설집『돈황의 사랑』『원숭이는 없다』와 시집『명궁』 등

▶한국창작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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