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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체계 혁신 공약 내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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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희원
동국대 교수·법과대학

『글로벌 트렌드 2025』는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5년마다 발간하는 가장 실천적인 지구 미래 예측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세계화의 명암, 늙어가는 세계, 중심이 사라진 국제정치, 에너지와 식량자원의 위기, 꺼지지 않는 지역분쟁, 낡은 국제기구 시스템에 대한 경고를 전한다. 그리고 정치는 국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향후에는 글로벌 리더십이 더욱 핵심이라고 결론짓는다.

 12월 19일 대한민국을 5년간 이끌고 갈 제18대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의 정책공약에는 글로벌 질서에 대한 미래비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민주화·복지·교육혁신·검찰개혁·수사권조정 같은 국내 가치에 대해서만 말한다. 야당은 여당이 북한인권법 제정 회피나 북한에 대한 단호한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면 선거를 앞둔 북풍 공작이라고 역공한다.

 오늘날 주권국가들이 국익을 내세우며 벌이는 무한경쟁은 전 지구적 영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우주·남북극·북극항로·세계경제질서·국제기구나 초국가적 안보위협 세력에 대한 정책공약은 거의 없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같은 국내 가치는 국가안보가 확립될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세계 경기의 장기 불황과 함께 각국의 국익우선주의로 인해 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분명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임기 중에 글로벌 경제위기·테러·마약·환경파괴 같은 초국가적 안보 위협과 세습 권력을 다지려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정권과의 군사위기와 북한의 붕괴라는 역사적인 숙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동안 북한 노동당 정권 하나에 대해서만도 대한민국 정보공동체는 적지 않은 정보 실패 경험이 있다. 따라서 국가정보 체계를 시대에 맞게 혁신하는 것은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국정운영 방책이다. 국가정보 체계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망망대해에서 국가안보 수호를 위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주권국가의 촉수로서 국가의 존립 자체와 지속적인 발전문제를 담당하는 국가정보체계는 단순한 국내 치안유지 기구인 경찰·검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국가정보체계의 혁신을 위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단추는 무엇일까? 요체는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의 분리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보선진국들은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를 분리한다. 해외 정보의 중앙정보국(CIA), 국내 정보의 연방수사국(FBI)으로 분리해 경합과 협력 속에서 최고의 국가 정보를 창출하는 미국이 정답을 준다. 영국·프랑스·독일·이스라엘·러시아·인도도 해외와 국내 정보를 분리한다. 국내와 해외 정보는 정보 속성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외 정보는 전 세계를 무대로 모든 저력을 발휘하며 첩보를 획득해 지속적인 전략정보를 창출하는 국책연구소, 그리고 비밀공작을 수행할 수 있는 기동타격대가 돼야 한다. 반면에 국내 정보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을 향한 방첩정보가 핵심이다. 이에 국내 정보는 최고의 수사력과 결합해 전통적인 간첩은 물론이고 공동체 음해나 테러 세력, 마약·대량살상무기 밀거래 조직, 산업스파이 등 국가안보 저해 세력과 전쟁을 수행하는 정보수사 사령탑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해외 정보와 분리된 국내 정보를 경찰·검찰의 대공 수사력과 아울러 수사체계의 재편을 이뤄야 한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 등은 기존 치안력의 재편이라는 근시안적인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해외 정보에서 분리된 국내 정보로 최고의 방첩정보수사기구를 창설하는 것이 공산세력과 공동체 음해 세력, 테러집단 같은 초국가적 안보위협 세력으로부터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한 해답이다.

한희원 동국대 교수·법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