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아낀 선조들] 군사 근대화 앞장 흥선대원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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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1867년 가을. 한강의 노량진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특이한 구경거리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날 훈련대장 신관호는 자신이 만든 수뢰포(水雷砲)를 대원군 앞에서 실험하고 있었다. 강 가운데에 떠 있던 조그만 배는 수뢰포를 맞고 10여길(보통 성인 키의 10여배)을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부서지면서 떨어졌다.

많은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신기하게 여겼다. 물론 이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작은 배 한 척을 부술 뿐, 어찌 큰 배를 깰 수 있겠는가."(출처:'조선왕조실록')

대원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또 다른 여러가지 실험을 강행했다. 매우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군선(軍船)을 만들도록 하거나, 심지어 서양의 오랑캐들이 사용하는 조총의 탄환을 방어할 수 있는 갑옷(방탄조끼)을 만들도록 했다.

물론 어떤 실험은 성공해 제작 책임자들이 큰 상을 받기도 했고 어떤 실험은 그 결과가 매우 초라하기도 했다. 면을 겹겹으로 하면 총알이 뚫지 못하는 데 착안해 13겹 면옷을 만들기도 했다.

방탄 효과는 있었으나 너무 두껍게 만든 통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더운 여름에는 입은 사람이 코피를 쏟기도 했다.

이양선(서양 배)의 출몰이 잦아지고 이웃 중국이 서양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엄연한 현실을 본 대원군은 서양의 장점인 과학기술을 도입해 '서양의 오랑캐'를 제압하고자 했다. 이는 선진 기술을 토대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1단계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소개한 서적들을 수입하는 일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 규장각(奎章閣)에도 당시 수입된 과학 서적들이 상당수 소장돼 있다.

당시의 불안한 국제정세 때문에 군사 부문의 서적이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물리.화학.의학.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서적들이 도입됐다.

서양 지식들을 중국인이 편집한 것이 대부분인 당시의 책들 가운데 '화륜선도설(火輪船圖設)'이라는 책 한 권은 흥미를 끈다.

대원군 집정기에 조선인 학자 누군가가 편집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책은 당시 서양 과학기술의 장점을 정리한 중국 과학자들의 책을 다시 한번 조선인의 입장에서 요약해 베껴 둔 것이다.

여기에는 화륜선(火輪船), 즉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배의 제작도에서부터 공선수뢰(攻船水雷)라 하여 군함을 공격할 수 있는 일종의 수뢰(水雷) 장치의 설계도, 그리고 지뢰(地雷)와 서양식 자동 소총, 망원경 등의 제작방법이 소개돼 있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군사 기술들이었다. 이들 첨단 기술은 앞서 보았던 것처럼 대원군에 의해 모두 실험되고 제작됐다. 실패하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 정신이 중요한 것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변화의 흔적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제 2003년의 새해도 밝았고 새 정부가 들어설 예정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은 첨단과학으로 인해 그 결과를 예측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한국 역시 첨단 과학기술 개발의 경쟁에 뒤처질 수 없다. 변화를 주도하지 못할망정 따라가지도 못한다면 생존할 수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 서울대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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