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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양의 계절’과 정당 ‘태양의 당’ 사이 메우기 힘든 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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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동문(1927~1993)은 시인인 동시에 탁월한 출판기획자였다. 맹목적 반공 이데올로기가 서슬 퍼렇던 시절 최인훈의 문제작 ‘광장’이 빛을 본 것은 순전히 신 시인의 용기와 안목 덕분이었다. 그가 기획해 신구문화사에서 출간한 ‘세계전후문학전집’(1960년)은 대한민국 문단과 지성계에 커다란 자극이자 자양분 역할을 했다.

 신 시인은 전후문학전집 제7권(일본편)에 실린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사양’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일본편에 포함된 소설 중 하나가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의 출세작 ‘태양의 계절’이다. 이시하라는 대학생 시절인 1955년 발표한 ‘태양의 계절’로 이듬해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분방한 삶을 묘사한 ‘태양의 계절’은 일본에서 ‘태양족’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때마침 유행하던 로큰롤 음악과도 궁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신구문화사판 전후문학전집에서 ‘태양의 계절’을 처음 접한 중년 이상 독자분들이라면 아직도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이 신체 특정 부위로 방문의 창호지를 뚫자 방 안에 있던 여성이 읽던 책을 집어 던지는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70년대 초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마치 죄라도 지은 양 얼굴이 화끈거렸던 추억이 생생하다.

 이시하라는 ‘태양의 계절’의 인기를 바탕으로 1968년 참의원 의원에 당선, 정계에 진출했다. 1995년 4월, 그는 중의원 본회의에서 의원 근속 25주년 표창을 받은 뒤 인사말을 통해 “모든 정당,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이기적이고 비겁한 보신(保身)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무기력한 정당·정치인이 국민의 정치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금 국가는 거세당한 환관처럼 돼버렸다”는 질타도 했다. 의원에서 물러난 그는 나중에 도쿄도지사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런 이시하라씨가 13일 ‘태양의 계절’을 연상시키는 명칭의 ‘태양의 당’ 출범을 선언했다. 이제까지 그의 언행으로 미루어 극우 성향의 공약들을 내걸고 다음 달 총선에 나설 듯하다. 어느 나라나 작가와 정치가의 거리가 아주 먼 것은 아니지만, 두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이웃 나라 옛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태양의 계절’과 ‘태양의 당’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낯설고도 아쉽다. 그는 ‘강한 일본’을 원하는 것 같다. ‘태양의 계절’에 나오는 특정 장면이나 의원직을 던질 때의 ‘거세당한 환관’ 발언을 보면 그가 혹시 남근(男根)주의 내지 거세공포 심리에 휩싸여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도 대선을 코앞에 둔 처지에, 너무 주제넘은 이웃 나라 걱정인가.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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