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아이들 살리려면 수업시간 감축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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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맘때쯤이면 조금이라도 바뀐 게 있었어야 했다. 2008년 교육학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설파했던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학교’라는 미래 구상은 지금 봐도 너무 낯간지럽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 학자들이 내놓은 미래라고 해도 지금 와서 ‘하기 싫은 공부, 지겨운 학교’가 된 현실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기도 좀 그렇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와 교육관료들은 당시 학교 교육의 설계도라고 하는 교육과정을 뜯어고치려고 작심을 한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잘못 그려진 회로도를 보고 노동자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기판 위에 부품을 갖다 붙이는 격이라고 할까. 아이들은 “열심히 하면 돼”라는 부모와 학교의 독려에도 뭔가 잘못돼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돼 있는지 노동자나 아이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에서 후보자들 중 적어도 한 명쯤은 뭔가 뒤틀려 있는 문제를 지적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대선 공약은 고교 무상교육, 대입 단순화, 학업성취도 평가 축소 또는 폐지에서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외고 같은 특목고를 놔둘 것인지, 아니면 일반고로 바꿀 것인지 정도에서 후보자들 간 입장이 갈리는 정도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에게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학교에 즐겨 가고 싶게 해주겠다는 장밋빛 공약은 왜 안 보이는지 물어봤다. 몇몇 분들은 “이게 말처럼 쉽나요”라고 답을 줬다. 그런 면에서 지금 대선 후보나 후보 캠프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5년 전 후보들보다 분명 양심적이다.

 일부 교육학자들이 꿈꿨던 미래는 지금 보면 허망한 꿈이 됐을지 모르나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은 질긴 잡초가 됐다. 최소한 중·고교는 5년 전보다 지금 국·영·수를 더 가르치고 있다. 한 학기에 배우는 과목이 10개에서 8개로 줄어들긴 했으나 수업시간(시수라고 부른다)은 과거처럼 그대로이고, 학교가 과목별로 가르칠 내용을 경량화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학생들은 학습 부담을 더 느낀다. 국·영·수에 올인하게 하는 과목 통폐합, 집중이수제는 이명박 정부의 관·학 합작품이다.

 이제 잡초가 자라 무성해진 학교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3학년 2학기 영어 평가 계획이다. 100점 만점에 영어 말하기가 20점인데 학생이 주제를 정해 영어로 원어민 교사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 숙제검사 한 번당 1점씩 5점, 태도 점수 5점. 다른 과목에서도 이런 식의 수행평가 과제투성이다. 숙제, 과제, 시험으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일정이다. 이 학교의 영어교사는 “아이들이 원어민 교사 앞에서 발표할 때 많이 긴장한다. 안쓰럽다”고 말했다.

 도대체 우리 학교는 어떤 아이를 만들려는 것일까. 4년 전 미래형 구상 첫머리엔 ‘세계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으로 돼 있다. 이것이 이상이라면 실제로 학교는 우리 아이들을 과제 수행 잘하고, 수업 잘 따라오며, 단 한 번도 방심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을 원하는 것 같다. 학교 다니는 기간 동안 잠시의 일탈은 그동안 점수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우리 학교에서는 여전히 배워야 할 내용이 많다. 학교 밖에 더욱 풍부한 가르침이 있는데도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매달려야 하고, 이를 내신 학원이나 과외로 연장해야 한다.

 이제 10여 년 이상 꿈쩍도 하지 않는 이수 단위, 수업시수는 줄일 때가 됐다. 광고 카피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 학습 내용을 현실에 맞게 경량화하는 등 구조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시수 감축은 교육대나 사범대의 교사 인력 수급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이는 교육행정가나 학자가 아니면 건드리기 어려운 전문 영역이기도 하다. 특히 과목 축소 같은 일은 자기 밥그릇을 손대는 문제이기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교육학은 우리 교육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서태지가 1994년 랩으로 외쳤던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울림이 전혀 먹히지 않은 지금의 현실을 이 땅의 교육학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