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찬성론자에게 ① 대기업 경영권 방어 급해질 텐데 … 성장 대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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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측이 답해야 할 첫째 질문은 ‘그럼 성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개혁의 대상이 된 대기업은 성장의 주축이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개혁 대상은 기업이 아닌 총수 일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업과 총수를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대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경영권 방어에 힘을 쏟을 것”(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이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전삼현(법학) 숭실대 교수는 “국경 없는 시장 체제에서 대기업 규제는 결국 외국 기업에 기회를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경제민주화가 배 아픈 것은 해결할지 모르지만 배고픈 것까지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경제여건은 최악이다. 올해 성장률은 2%대가 불가피하다. 내년 성장률도 3%를 밑돌 것이란 전망(금융연구원)까지 나온다.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일자리는 7만 개 줄어든다. 쓸 돈이 늘어나지 않으면 골목상권의 아우성도 잦아들 수 없다. 생산인구의 감소, 미래 성장동력의 부재 등 구조적 문제도 쌓여 있다. 일각에선 재계가 경제위기론을 내세워 경제민주화의 뒷다리를 잡는 것 아니냐고 경계한다. 이승훈(경제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으레 어려운 경제 현황은 재벌 개혁에 대한 편리한 입막음 수단이었다”며 “그러나 지금 경제는 정말로 어렵다”고 말했다.

 둘째는 중소기업 경쟁력 문제다. 경제민주화의 주요 타깃은 ‘재벌 개혁’이다. 뒤집으면 중소기업 보호이자 육성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손발을 묶는다고 커지지 않는다. 자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이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160여 개에 이른다. 벤처기업에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10년 이상 벤처기업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피터팬 기업’이 1309개에 달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대기업의 42.7%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강해야 경제가 잘된다는 주장 역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비중이 75%가 넘는 대만의 올해 성장률은 1.3%로 전망된다. 비상이 걸린 한국 경제(한국은행 전망 2.4%)보다 한참 낮다. 이상승(경제학) 서울대 교수는 “창업의 걸림돌을 찾아내 고치고, 소기업의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대기업이 사주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상생”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마지막으로 답해야 할 질문은 ‘도대체 약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점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해온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지난달 14일 “파리바게뜨는 재벌이 아니다”라며 “샤니에서 성공해 해외에서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생적인 동네 빵집이 가장 성토하는 대상은 프랜차이즈 빵집이다. 높은 인지도와 대량 공급 체계를 앞세워 골목상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재벌 빵집’이 여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동네 빵집에 대한 실질적 위협은 이런 ‘빵집 재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마장동의 정육점들은 유통망을 확대해가고 있는 농협을 성토한다.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보호’를 강조하다 보니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창조적 경쟁은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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