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의 변치 않는 힘, 사회적 약자 향한 그 시선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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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을 새로 번역한 정기수 전 공주대 교수. “『레 미제라블』은 대중소설의 탈을 쓴 현대인의 서사시”라고 말했다. [사진 민음사]

1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장발장이 다시 우리 앞에 섰다. 19세기 프랑스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1802~85)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소설과 뮤지컬, 영화를 통해 독자와 관객을 찾는다.

 일단 세계 4대 뮤지컬인 ‘레 미제라블’의 첫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 3일 막을 올렸다.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레 미제라블’은 다음 달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한다.

 스크린과 무대뿐만 아니다. 원작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과 사건을 더 깊이 읽을 수 있게 됐다. 50년 전 이 작품을 국내 첫 완역했던 정기수(84) 전 공주대 교수가 소설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며 다시 번역한 『레 미제라블』(민음사)을 내놨다.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민음사)과 『랑송불문학사』(을유문학사) 번역자로 유명한 그의 학문적 여정을 집약한 수작이다. 9일 그를 만났다.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코제트 역할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

 - 『레 미제라블』을 처음 완역한 1962년은 원작 출간(1862년)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에 정음사에서 발간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포함된 책이었다. 세상이 워낙 바뀌어서 다시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며 번역했다. 50년 전에는 한자어를 많이 썼는데 이를 다 한글로 풀어 쓰다 보니 5권이나 됐다.”

 『레미제라블』은 그 어떤 수식어도 무색한 세기의 명작이다. 역사와 사회·철학·종교·인간사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서사시로 영화와 뮤지컬, 어린이용 번안 판 소설 등으로 변주되며 시대와 국경을 넘어 사랑받고 있다.

 - 문학작품으로서 『레 미제라블』의 강한 생명력은 뭔가.

 “담고 있는 세계가 광범위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커다란 줄거리지만 19세기 프랑스 격동의 시기의 정치와 사회·역사의 모든 면을 담아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어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그는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맞다”며 “주인공인 장발장, 코제트의 어머니이자 불쌍한 여인인 팡틴, 도둑과 악당 등 가련한 사람들이 『레 미제라블』 속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위고가 그려낸 이 수많은 군상은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이고 ‘마들렌 시장’으로 변신해 이들의 곁에 서는 장발장은 위고의 고민을 반영한 정치인의 모습인 셈이다.

 - 위고의 작품을 읽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실 위고의 작품을 비롯한 프랑스 소설은 역사와 철학, 사상 등이 얽혀 있어 지적 소양 없이 읽기는 좀 힘들다. 하지만 역사와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와 인물 간의 대화가 물결치듯 오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위고는 인물 묘사보다 환경이나 상황 묘사에 탁월하다. 워털루 전쟁에 대한 묘사는 정말 생생하다. 특히 나폴레옹의 퇴장을 ‘한 위대한 인간의 퇴장은 위대한 세기의 도래에 필요했다’라고 한마디로 평할 때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 재번역을 하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정숙한 미인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정숙하다’는 건 원전에 충실한 것이고, 미인이라는 것은 표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번역을 하다 보면 정숙하지만 미인이 아닌 경우도 있고, 원작에 어긋나지만 술술 읽히는 ‘부정한 미인’도 있다.”

 -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프랑스 시 중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골라 번역하고 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앙리 드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4부작을 소개하고 싶다. 시적인 문장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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