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가 공허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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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18면

각종 조사를 위한 심리척도에 대한 논문은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대부분 버려진다. 심리상태를 수치로 가시화하는 것도 어렵고, 사실 쓸 데도 없기 때문이다.
주관적 마음을 숫자로 담으려 하는 게 애초부터 무리다. 각종 이학적 검사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예컨대 검사 전날, 술과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나면 고지혈증과 당뇨로 오해할 수 있다. 만성간염을 앓다가 간경화로 진행된 경우 상태는 나빠도 간수치는 정상일 때가 있다.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커다란 암 덩어리는 줄어들었는데,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질병의 원인을 찾는 역학조사는 더 힘들다. 마을 주민이 갑자기 여기저기 아프다며 병원을 찾는다면 물이나 토양의 중금속 같은 것으로 오염된 것은 아닌지, 감염 원인은 무엇인지 찾게 된다. 그러나 때론 집단 히스테리 현상으로 정신증상이 퍼지는 때도 있어 진단이 힘들다. 더 위험한 건 통계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 갑자기 사망률이 높아졌다면 이 지역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 저주받았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기간부터 유입 인구가 전혀 없어 노령화에 따른 자연사망률이 많이 보고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통계적으로 성폭력은 늘어났으나 법이 피해자를 보호해 주고 의식이 깨어나 더 많이 신고한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갑작스럽게 갑상샘암이 늘어났지만 검진을 더 자주 받고 진단기술이 정밀해진 탓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조사인의 편견도 무섭다. “이 약을 먹고 병이 나아졌지요?”라는 질문과 “약을 먹어도 병이 낫지는 않았지요?”라는 질문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유도한다. 암시효과도 있다. 좋지 않다고 대답할 경우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라고 다시 한 번 물어본다면 피험자들은 “아, 좋은 것 같기도 하네요”라고 말을 바꿀 수도 있다. 이렇게 조사자와 피조사자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이 감춰질 수도 있는 게 모든 조사나 검사의 객관적 현실이다.

심지어 주관성을 배제한 과학적인 실험에서조차 관찰자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시공간의 수치가 다르게 나온다. 우리가 아는 상대성원리다. 정치인에 대한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조사자의 변인뿐 아니라 피검자의 변인도 있다. 먹고살기 바쁘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기가 귀찮은 사람들은 투표는 물론 조사 자체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바쁠 것도 없고 말할 상대도 없는 심심한 이들은 투표나 조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이다(필자는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끊는다. 시간이 없으니까).

검사건, 진단이건, 조사건 그에 대한 치료와 후속조치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치료는 하지 않고 검사만 받는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도울 사람은 돕지 않고, 문제가 있으면 일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부터 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얼마 안 되는 치료비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들도 있는데. 2년에 한 번 누구에게나 무료검진을 시행할 만큼 공단이 돈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정책은 잊고 개인의 지지도만 묻는 여론조사가 공허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핵심은 회피하고 불안만 잠재우려는 고식적 방법이 아니라 실제 대책을 세우는 데 꼭 도움이 되는 검사와 조사를 하는 것도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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