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농구선수 생명 흔드는 '부상투혼'

중앙일보

입력

플레이오프를 향해 가는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는 적십자기가 나부끼는 '병원 열차' 다. 무수한 부상 선수들이 고통을 참으며, 때로는 언제 선수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공포감 속에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국민은행 김지윤은 왼손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파스를 붙이고 출전하고 있다.

삼성생명 변년하는 1년 전 아킬레스건을 부상해 경기를 마치면 고통스러워 잠을 못 이룬다.

몸에 성한 곳이 없던 현대 전주원은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나서야 열차에서 내렸다.

엄밀히 말해 부상자 없는 팀은 없다. 주전급 선수라면 모두 부상자라고 보면 된다.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한 선수도 있다.

그런데 아픈 선수들이 쉬지를 못한다.

코치들은 "병원에선 당장 쉬어야 한다더라" 면서도 "선수가 그정도 아프다고 쉴 수는 없지 않느냐" 며 출전시키고 있다. 1승, 1승에 집착해 선수의 부상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상을 무릅쓴 선수에게는 으레 '부상 투혼' 이니, '살신 성인' 이니 하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조금 과장하면 찬사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에게 뿌려지는 꽃가루와 같다.

1957년 제정된 구(舊)어린이 헌장에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자프로농구를 보면서 44년 전의 어린이 헌장을 떠올리게 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다친 선수는 쉬어야 한다" 는 헌장이라도 제정해야 다친 선수들이 선수 생명을 걸고 뛰어야 하는 악습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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