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정치든, 경제든, 복지든, 뭐든지 억지로 꾸며서 만들기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푸는 게 제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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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멍청한 자식들을 봤나. 벌써 두 마리째다. 어제도 거실 창 앞에 한 마리가 죽어 있더니만 또 있다. 통통하고 털에 윤기까지 흐르는 박새다. 심장마비인가. 온기도 남아 있고 부리에 묻은 침도 그대로다. 인공호흡은 좀 난감하고 심장부위를 털이 빠지도록 마사지해 보았다. 늦었다. 또 묻어줬다. 지붕 위에 뭐가 있나 싶어 사다리로 올라가 봤다. 없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유리창인 줄 모르고 유리창에 머리를 디밀다가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다. 아하. 사인은 뇌진탕이었구나.

 얼마 전 뉴스에서도 봤다. 고속도로 옆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많은 새들이 죽는다고. 색깔 있는 방음벽으로 바꾼다는 것 같던데.

 연달아 죽은 새 두 마리. 내가 죽였다. 멍청한 놈은 새가 아닌 바로 나였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선물로 받은 유리세정제. 여태 한 번도 유리창을 안 닦다가 세정제가 생겼기에 큰맘 먹고 닦아 놨더니 이런 일이. 유리알 같은 유리창에 앞산이 그대로 비쳐서 하늘을 날던 새가 같은 산줄기인 줄 알고 머리를 쳐 박고 죽은 거다.

 아파트를 떠나 시골 숲에 산 지 어언 1년. 아직도 ‘자연에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깜깜한 밤이 무섭다고 외등 켜놓고 자는 탓에 산짐승들의 잠을 설치게 했고, 내 몸 하나 시원하자고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을 켜는 바람에 실외기 근처 풀을 다 말라 죽였고, 추우면 옷을 껴입는 대신 히터를 틀어 방안 화초는 마른 풀이 되어 가고. 숲 속에 반짝반짝 커다란 유리창 또한 ‘자연에 자연스럽지 않은’ 거다.

 태풍 불던 지난여름, 앞마당 해바라기 몇 가지가 꺾였다. 지지대 해준다는 걸 깜빡하고는 얼마 후에 봤더니, 꺾인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는 모두 ‘해를 바라기’하고 있었다. 기역자로 꺾인 부분은 다른 줄기의 두 배는 되게 두꺼웠다. 다치지 않은 다른 꽃들보다 꽃도 훨씬 크고 씨앗도 촘촘하다. 이런 게 ‘자연치유’인가 보다. 지지대를 해줬더라면 ‘나 아파요’ 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지지대에 얼굴을 기대고는 비실비실 컸을 터였다.

 흔히들 말하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자연스럽게 산다’의 ‘자연스럽게’는 무슨 뜻일까. 그 자연이 ‘자연환경’의 자연과 같은 말인가. 영어도 같은 단어이니 어원은 같을 거다. 백과사전을 뒤졌다.

 ‘자연스럽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혹은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자연’,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그렇다면 ‘사람이 억지로 힘을 더하지 않아서 순리에 맞고 이상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인가. 정치든, 경제든, 복지든, 뭐든지 억지로 꾸며 괜히 이상하게 만들고 풀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고 풀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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