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 도덕적 굴레를 벗어나라

중앙일보

입력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나는 고향을 갖고 있지 않다" 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 쪽에서부터 묘한 마력이 느껴지는 일기체 형식의 특이한 소설이다.

일본의 '여류문학자상' 을 수상한 바 있는 하야시 후미코(1903~1951) 가 자신의 유년시절에서부터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역경을 딛고 작가로 성장한 20대 중반까지의 방랑과 애환이 담겨 있다.

번역을 한 최연(영남대 동양어문학부) 교수는 "1930년 첫 출판 때 60만 부가 팔린 이 소설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나' 가 당시 일본 사회가 요구하던 정숙한 여자의 정형에서 벗어난 인물이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 집이 없어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고 12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행상을 나선 그녀는 가정부를 비롯해 공장의 여공.노점 상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도쿄의 밑바닥 생활을 한다. 하지만 사랑하던 사람의 처절한 배신이란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밝고 강한 개성을 가진 여류 작가로 성장하는 모습이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남자에게 얻어 먹는 것은 진흙을 씹는 것보다도 괴로운 일" 이라고 말하는 데서 보듯 그녀의 외침 속에는 페미니스트의 원형이 발견되기도 한다.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중시하는 그녀는 여자에게만 강요된 도덕적 굴레는 삶의 진리 앞에 허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전(反戰) 작품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다 심장마비로 타계한 작가 후미코는 "서민들의 애절한 삶의 모습 속에서 진실을 직시하는 작가" 로 평가 받는다. 이 책은 '일본현대문학대표작' 번역시리즈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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