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소설가의 가슴엔 어떤 언어가 차오를까. 뮤지션이 꿈꾸는 휴가는 뭘까. 지난해 week&은 문득 ‘그들’의 여행이 궁금해졌다. 그들에게 여행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믿을 만한 안목의 소유자를 수소문했다. 그러고는 제안했다.
“일주일간 여행을 보내드립니다. 어디든, 꿈꾸던 장소로요. 조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곳 공기를 담뿍 담은 여행기 한 편이면 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열 명의 유명인이 기꺼이 수락했다. 소설가 김훈을 비롯해 은희경·신경숙·백영옥과 영화감독 이명세,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셰프이자 에세이스트인 박찬일, 뮤지션 장기하·이적. 가장 먼저 합류한 이는 이병률 시인이었다. 베스트셀러 여행 에세이 『끌림』의 작가인 그는 열 번의 여행에 모두 동행해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여행 경비는 삼성카드가 협찬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 week& 커버스토리에 연재된 ‘나의 여행 이야기’는 지난 8월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1년 가까운 대장정이 2일인 오늘, 출판사 ‘달’에서 단행본으로 엮어져 나온다. 『안녕 다정한 사람』. 연재 당시 한정된 지면상 못 다한 얘기를 더해, 저마다의 글 맛이 더 웅숭깊어졌다.
편지봉투를 닮은 겉장을 열면 첫 주자 은희경 작가가 고개를 내민다. 태양이 화염처럼 작열하던 지난해 늦여름, 그는 봄이 갓 움튼 호주 포도밭으로 숨어들었다. 그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됐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 ‘당신은 이런 사람’이란 세상 모든 잣대를 내던진 채 작가는 벌거벗은 감각으로 밀회를 즐긴다. ‘와인’이란 이름의 애인과 함께…. 부러 순서를 맞춘 것도 아닌데 여류 작가의 기민한 문장은 읽는 이의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남은 여정에 온전히 몸을 실을 수 있도록.
장기하와 이적은 각기 영국과 캐나다에서 음악에 취한다. 흥미로운 건 그들 역시 누군가의 팬이란 사실이다. 이적은 세라 맥라클란의 라이브를 듣기 위해 퀘벡 체류 일정을 늘리고, 장기하는 폴 매카트니 콘서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20년 만에 새삼 자신의 ‘팬심’을 재확인한다.
여행이 늘 일탈은 아니다. 김훈 작가에게 여행은 세계를 관찰하는 ‘노동’이다. 서태평양의 섬들로 이루어진 미크로네시아 연방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의 최남단 전진기지였던 축 섬을 클로즈업한다. 그러면서 당시 강제 징집된 숱한 한인의 애먼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북받치는 감정은 대부분 언어화되지 못하고 마음속 변방으로 가서 저문다. 언젠가 알맞은 때를 기다리며….
지난해 홍수에 잠긴 태국에서 첩보영화 ‘미스터 K’의 밑그림을 그린 이명세 감독의 여행기는 그가 영화에서 하차하며 더욱 귀한 글이 됐다. 그리운 곳으로 향하는 것 또한 여행이다. 신경숙 작가는 1년간 머물렀던 뉴욕 맨해튼으로 날아가 자신이 쓰던 원룸의 탁자 모서리에 닿던 팔꿈치의 감각을 추억한다. 1만5000원.
나원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