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대선 후보 맞짱 토론을 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채인택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 첫 화요일에 치르니까 바로 다음주인 6일(현지시간)이다. 얼마 전 미국에 늦깎이 유학을 떠난 후배와 통화하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대선으로 옮아갔다.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대선을 치르기는 20년 만의 일이다. 한·미 대선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다. 자연 대화가 길어졌다. 현장에서 지켜본 가장 흥미로운 일을 물었더니 지난 10월에 3차례 열렸던 대선 후보 ‘맞짱’ 토론을 꼽았다. 사실 국제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숱한 사람이 같은 생각임을 알 수 있다.

 미국 후보 토론의 핵심은 정책이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밋 롬니의 격돌 과정에서 상당수 미 시청자는 이들이 앞으로 펼치겠다는 정책을 서로 비교하면서 선택에 참조했을 것이다.

 후보 토론이 알려주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책이다. 시청자들은 재정적자·건강보험·세금·에너지·노인의료보장 등 자신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양한 이슈에서 정책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후보들이 앞으로 펼칠 정책으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다. 사실 미국은 국론이 극명하게 갈린 나라다. 낙태·총기·동성결혼·이민정책 등 현안에 따라 여론이 서로 나뉜다. 백인과 유색인종, 중산층과 노동계층, 남성과 여성 등 대립은 끝이 없다. 여러 이슈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대선전이 갈등 증폭의 계기가 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 이유의 하나가 후보 토론이 아닌가 싶다. 후보들이 토론장에서 한바탕 격론을 벌이면서 각각의 주장을 시원하게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후보들이 맞짱 토론을 벌이면 대선을 저주의 굿판이 아니라 카타르시스의 축제로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다. 90분에 걸친 토론은 각 후보의 순발력은 물론 극한에 몰리면 어떤 성격으로 변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미래 지도자의 품성을 확인해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기회다. 셋째, 보좌진의 실력이다. 사실 후보 토론은 시선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철저히 사전 준비된다. 후보들은 무대 배우나 진배없다. 수없이 연습하고 가다듬어 그 자리에 선다. 여기서 후보의 능력은 물론 보좌진의 실력도 함께 볼 수 있다. 어차피 국정운영은 팀 플레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를 뒷받침할 보좌진의 실력과 이들을 지휘하는 후보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권자들은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보고 표를 던질 후보를 고를 권리가 있지 않을까. 후보들이 돌아다니며 단발성으로 한두 마디 하는 유세나 이들을 따로 모셔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터뷰성 행사로는 유권자들의 타는 목마름을 달랠 수 없다. 후보들이 함께 모여 정책을 놓고 불꽃 튀기는 토론을 벌여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참모습을 유권자들이 알 수 있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인물이라면 적어도 유권자들에게 그 정도는 보여주고 표를 부탁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이런 후보 토론은 부동층의 표 향배를 좌우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 칼럼니스트인 이언 부루마 바드칼리지 교수에 따르면 미국엔 정당별 골수 지지자도 많지만 부동층이 17%(대선후보 토론 전인 10월 초 기준)나 된다. 흔히 골수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만든다고 착각하지만 지지율이 서로 엇비슷할 때는 부동층의 막판 결심이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 막판 결심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후보 토론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 여론조사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최근까지 유권자 5명 중 2명이 찍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후보 토론은 부동층을 고무해 투표율을 높이는 좋은 방안이기도 하다.

 맞짱 토론만큼 후보들의 열정과 진지함, 그리고 정책 콘텐트를 상세히 볼 수 있는 대선 행사는 없어 보인다. 선거의 품격과 국민 접근성을 높이고 정책대결로 이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선거일까지 40일 넘게 남았다. 후보들끼리 합의만 하면 가능한 일이다. 유권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이번 선거부터 이를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