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계열사 ‘독립’ 경영 체제로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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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그룹에 묻지 마라.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라. 그에 대한 책임도 져라.’

 SK그룹의 경영 형태가 이렇게 바뀐다. 요약하면 ‘지주회사 중심에서 계열사 독립 체제로’다. 요즘같이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일일이 그룹에 보고하고 답을 기다리다간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니 스스로 판단해 발 빠르게 대응하라는 것이다.

 SK그룹은 29일부터 1박2일간 서울 광장동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최태원(52·사진) 회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그룹 수뇌부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2012년 CEO 세미나’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따로 또 같이’는 2002년부터 SK가 내세운 그룹 경영 모토다. 때론 계열사가 독립적으로, 때론 그룹이 힘을 모으자는 뜻을 담았다. 그러던 것이 이번 3.0에서는 ‘독립’에 더 큰 무게를 둔 것이다.

 익명을 원한 SK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 투자 계획을 지주회사에 올렸다가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 관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투자 시기를 놓친 경우가 왕왕 있었다”며 ‘따로 또 같이 3.0’이 나온 배경을 전했다. 그는 또 “통신비 인하 등과 같은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해당 계열사가 빨리 대응해야지 일일이 지주회사의 판단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독립’이 기본이지만 예외는 있다. 해외 자원개발용 ‘패키지 딜’ 같은 것이다. 예컨대 SK텔레콤이 통신 인프라를, SK건설이 플랜트를 지어주고 그 대가로 SK이노베이션이 자원을 확보하는 경우다. 이때도 지주회사는 “이런 사안이 있으니 검토해 보라”고만 할 뿐 함께 뭉쳐 사업을 할 것인지는 각 계열사의 CEO들에게 맡긴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춰 지주회사 내에서는 계열사 CEO들이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의 권한을 키우기로 했다. CEO들이 논의하고 결정을 하라는 의미다.

 SK그룹이 경영 방향을 바꾼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2년 ‘따로 또 같이’를 처음 도입한 데 이어 외국 펀드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인 2007년에는 지주회사로 전환해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제는 계열사별 중심의 수평적 그룹 운영체계를 통해 3차 도약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며 “지주회사 전환 이후부터 줄곧 고민해 온 각 계열사 중심의 플렛폼을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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