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잡힌 日 비밀투표 쪽지 보니…'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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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실시 된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 2차투표에서 니시다 쓰네오 유엔 주재 일본 대사가 투표용지에 ‘Republic of Korea’라고 쓰는 장면이 일본 TV아사히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TV아사히]

지난 19일 유엔본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선출을 위한 투표를 전후해 중국과 일본의 미묘한 움직임이 우리 측에 감지됐다. 비밀투표인데도 양국이 어느 나라에 표를 던질지 우리 측에 사실상 그대로 드러났다고 한다.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안보리 이사국 선출은 비밀투표가 원칙인데 이번에는 표심이 대부분 드러났다”고 전했다.

 우선 중국은 이번 투표에서 우리와 경쟁했던 캄보디아와의 특수관계 때문에 일찌감치 결심을 한 상태였다고 우리 측은 파악했다. 특히 투표 나흘 전인 15일 신병 치료를 위해 베이징에 체류해온 노로돔 시아누크(89) 캄보디아 전 국왕이 병사하면서 중국의 표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시아누크를 ‘중국 인민의 위대한 친구’라고 부르면서 당일 조문을 발표했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차기 최고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직접 조문했다. 중국의 외교담당인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은 17일 시아누크의 유해가 캄보디아로 귀국하는 길에 동행했고, 당일 천안문(天安門)광장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그 직후 안보리 투표에서 중국이 어디를 찍었는지는 누구나 다 알 정도의 분위기였다고 외교 당국자는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투표 이후 중국 외교관들은 한국 측의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협력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도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중국식 실리주의가 반영돼 있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은 안보리에 진출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표심도 투표 과정에서 드러났다. 2차 투표에서 일본이 한국을 찍은 사실은 일본 언론을 통해 이미 공개됐다. 당시 투표 현장에서 니시다 쓰네오(西田恒夫) 주유엔 일본대사가 ‘Republic of Korea(대한민국)’라고 쓴 쪽지를 TV아사히가 촬영하면서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순시 이후 일본에선 한국의 안보리 이사국 진출 지지 의사를 철회하라는 여론이 비등했었다. 하지만 중국과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으로선 중국의 지지를 받는 캄보디아를 밀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한 외교 당국자는 “2015∼2016년 안보리 이사국 도전을 선언한 일본은 몇 년 뒤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국제 무대에서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일본은 한국과의 협력이 아쉬운 대목이 많아 이번 투표를 그런 측면에서 활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전했다.

 결국 우리가 17년 만에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에 진출한 데엔 지역패권을 놓고 다투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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