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회의할 시간에 실제 제품 만드는 게 구글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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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정기현 부문장(左), 김창원 대표(右)

구글이 엔지니어 중심 회사라고 하지만 정작 엔지니어를 이끄는 이들은 따로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다. 구글에선 지메일·구글플러스 등 서비스별로 팀이 짜이는데, 이 팀을 이끄는 게 바로 프로덕트 매니저다. 각 팀이 해당 서비스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일하는 벤처기업이라면 프로덕트 매니저는 그 기업의 창업자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구글 미국 본사에 근무하던 한국인 프로덕트 매니저 두 명이 나란히 사표를 썼다. 한 명은 한국형 웹툰 서비스를 미국에 선보이겠다며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차렸고, 또 다른 한 명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를 만들어보겠다며 대기업에 들어갔다. 타파스미디어 김창원(38) 대표와 SK플래닛 정기현(38) 비즈니스유닛 부문장이다.

 이들이 매일 전 세계에서 2000명이 지원한다는 구글을 박차고 나온 이유는 “구글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서”다. 검색 서비스에서 메일, 웹 브라우저, 스마트폰 운영체제(OS)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구글의 서비스를 쓴다. 공장 한 뼘 없는 구글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정 부문장과 김 대표는 제품 중심의 업무와 속도를 꼽았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2005년 블로그업체 태터앤컴퍼니(TNC)를 창업한 김 대표는 회사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구글러가 됐다. 구글에서 그는 보고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기획서를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서비스로 만드는 게 구글 문화”라며 “만들어 쓰면서 고쳐나가기도 하고 아예 폐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구글에서 한국 기업으로 온 정 부문장은 잦은 회의와 보고에 깜짝 놀랐다.

 물론 한국 기업이 보고와 회의를 중요하게 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제조업체가 많다 보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정 부문장은 “실패에 따른 손실이 적을 뿐만 아니라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서비스 분야에선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 반응을 보는 게 중요한데 한국에선 서비스 기업들도 제조업체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사표를 쓰긴 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을 두 번이나 찾아오며 삼고초려한 서진우(51) SK플래닛 대표를 보면서 마음을 돌렸다.

 김 대표를 또 다른 창업으로 이끈 건 한국형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을 제패해 보겠다는 꿈이었다. 그는 “무료 인터넷 전화(다이얼패드)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싸이월드)가 한국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정작 세계로 퍼지진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김 대표는 “기술이나 서비스 경쟁력은 있었지만 글로벌 서비스로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이제 다음 세대 창업가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화방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만화를 대중문화 영역으로 끌어올린 웹툰 서비스를 창업 아이템으로 잡은 건 그래서다.

 김 대표가 차린 타파스미디어엔 정 부문장이 속한 SK플래닛이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이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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