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정지 정지 정지 8” … 저쪽서 “둘” 답하자 총 거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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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 수색대대원들이 25일 밤 중부전선 비무장지대를 수색·정찰하기 위해 통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통문 출입은 유엔사에 사전통보된 인원에 한해 가능하다. [중부전선=강정현 기자]

25일 밤 중부전선 최전방 철책 통문(通門) 앞. 주황색 경계등 불빛 아래 육군 6사단 수색대원 10여 명이 말 없이 ‘받들어 총’을 했다. 철책 안 비무장지대(DMZ) 수색과 정찰을 맡은 대원들의 신고였다. 북한군에게 포착될 수 있어서 경례를 하면서도 소리를 내진 않는다.

 실탄을 장전한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대원들에겐 팽팽한 긴장감이 풍긴다. “오늘 적이 내 앞에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대대장의 지시가 떨어진 뒤 통문이 열릴 때까지 5분여 동안 대원들은 손목과 발목을 돌리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려 했다. 철책 안에선 북한군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수색대대 조광현(21) 상병은 “작전 투입 직전이 가장 긴장된다”며 “그러나 나의 작전으로 부모님과 국민들이 안전하게 잠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긴장을 풀려 한다”고 말했다.

 철책 경비와 순찰을 맡은 일반전초(GOP) 부대의 인원, 근무시간 등은 모두 비밀이다. 식단도 그렇다. 노출될 경우 열량을 계산해 GOP의 전투력을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날만큼은 불고기버거, 잡채밥, 두부조림, 배추김치를 공개했다.

 중부전선 밤 기온은 0도 내외. 초겨울에 접어든 GOP의 밤은 낮보다 분주했다. 야간투시경과 실탄, 수류탄 등 챙길 게 많다. 지난 2일 동부전선에서 ‘노크 귀순’ 발생 뒤 순찰은 더 강화됐다. 제대를 얼마 앞둔 김국현(25) 병장은 “철책 근무자로서 귀순자에게 경계가 뚫린 건 남의 일 같지 않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근무 시간과 형태는 밤 길이와 날씨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요즘은 밤이 길어지면서 야간근무자가 늘었다. 대대장 박모 중령은 “야간근무의 피로도를 감안해 전반야와 후반야 근무를 나눠 일주일씩 번갈아 운영한다”고 말했다. GOP 부대원들의 일상은 365일 내내 똑같다. 휴일, 날씨에 상관없이 밤낮 근무 교대만 있을 뿐이다.

 “정지, 정지, 정지, 8!”

 부대 장교의 야간 순찰을 동행하던 중 어둠 속에서 짧고 굵은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순찰장교가 “둘”이라고 하자 근무대원은 “신원이 확인되었음”이라며 총을 거뒀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합구어’였다. 근무 투입 전 약속한 숫자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10이 약속된 숫자였다면 8이란 질문을 받고 2라고 답해야 한다.

 세 차례 답을 못하면 ‘암구어(暗口語)’로 2차 확인을 한다. 이것도 안 되면 전투태세 돌입이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므로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본다. 적으로 판단되면 사격, 수류탄 투척, 클레이모어 폭발을 순서대로 진행한다. 15초 만에 ‘상황 끝’이다.

 GOP 야간 근무는 ‘밀조’(밀어내기조)로 이뤄진다. 초소를 지키던 2인 1조의 경계근무자들이 순찰을 하며 다른 초소로 이동하면 그곳에 있던 경계병들은 또 다른 초소로 옮기는 식이다. 6사단은 밀어내기 간격을 5~10분으로 줄였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참은 자고, 후임병만 근무했다’는 예비역들의 경험담은 옛말이다. 도무지 잘 틈이 없다. 그 대신 체력 부담은 훨씬 커졌다. 임호영(육사 38기, 소장) 사단장은 “이곳은 24시간이 전투”라며 “누가 군대에 오고 싶겠나. 하지만 묵묵히 근무하는 병사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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