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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두껍고 목소리 큰 사람이 좌우하는 TV 토론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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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챔피언과 도전자가 링 위에서 맞붙었다. 공이 울리자마자 도전자는 저돌적인 공격으로 기선 제압에 나섰다. 챔피언은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주먹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첫 라운드는 챔피언의 완패. 상대를 얕보고 방심한 탓이 컸다. 챔피언은 태도를 확 바꿨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2, 3라운드에선 어느 정도 실점을 만회했다.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가 맞붙은 미국 대선 후보 TV 토론은 주먹 대신 말로 싸운 명승부였다.

 토론(debate)의 목적은 자신과 다른 주장을 가진 상대를 논리와 언변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일점을 찾는 토의(discussion)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토론은 내가 옳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지만 토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정에서 성립한다. 토의에는 결론이 있지만 토론에는 결론이 없다. 지켜보는 청중이 우열과 승패를 판정할 뿐이다. 토의와 토론을 혼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텔레비전마다 정치 토론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갑론을박하는 토론자들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나같이 어눌한 사람으로서는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가끔 “(너도 언론사 논설위원인데) TV 토론 같은 데 안 나가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한 친구들이다. 논설위원이면 다 같은 논설위원인가. TV 토론에 나가는 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내공을 갖춘 무림(武林)의 고수(高手)들이다. 그런 분들끼리 모여 일합을 겨루는 것이 TV 토론이지, 개나 소나 다 나가면 시청률은 누가 지키나.

 논리로 승부하는 토론은 머리싸움이고, 말싸움이고, 기싸움이다. 토론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과 성격까지 다 드러난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나가기 힘들다. TV 토론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토론하는 쟁점에 관한 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신감이 표정과 말투, 눈빛에서 묻어난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런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발언 도중에 마구 끼어들고, 사회자가 말려도 계속 떠들 수 있는 것도 자신감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적절한 비유와 사례를 타이밍 맞게 동원하는 순발력,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집요함,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재치도 감탄스럽다.

 토론의 첫 계명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열쇠도 거기에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수준 높은 논리가 불꽃을 튀기는 멋진 TV 토론을 보고 싶다. 얼굴 두껍고, 목소리 큰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TV 토론은 짜증이 난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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