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속으로 … 요즘 드라마 왕들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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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요즘 사극에서는 진정한 지도자로 커가는 왕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SBS ‘대풍수’의 한 장면. 변방의 장수였던 이성계(지진희)가 성장해가는 과정에 무게를 실었다. [사진 SBS]

올해 TV 드라마도 대선정국과 연관이 깊다. 유독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많이 나왔다.

 상반기에 ‘해를 품은 달’(MBC) ‘더킹 투하츠’(MBC) ‘옥탑방 왕세자’(SBS) 등이 인기를 끌었다. 충무로에서도 ‘후궁’ ‘나는 왕이로소이다’ ‘광해’ 등 왕을 다룬 영화가 잇따라 나왔다. 대개 사랑에 빠져있거나 어수룩한 모습, 혹은 신경이 쇠약한 상태로….

 하반기 드라마에서도 왕의 인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달라졌다. 상반기가 주로 멜로의 주인공이라면, 하반기에는 리더십의 주체다. ‘신의’(SBS)의 공민왕, ‘대풍수’(SBS)의 이성계, ‘대왕의 꿈’(KBS)의 김춘추는 진정한 리더십을 고민하는 지도자로 나온다. 대선이 코 앞,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담은 셈이다.

 상반기의 세 드라마가 시대를 특정하지 않았다면, 최근의 드라마들은 시대적 배경이 분명하다. ‘신의’와 ‘대풍수’는 고려 말기, ‘대왕의 꿈’은 삼국이 대립하며 정치적 혼란이 심했던 시절이다.

‘신의’의 공민왕(류덕환·왼쪽)과 ‘대왕의 꿈’의 태종무열왕(최수종).

 ◆킹메이커의 부각=돋보이는 건 왕의 곁에서 활약하는 킹메이커의 존재다. 왕은 신성불가침한 권력을 누리는 자가 아닌, 선택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설정이다.

 ‘신의’에서 10여 년간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공민왕(류덕환)은 처음에 소심하고 유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최영 장군(이민호)을 만나 점차 근엄 있는 지도자의 자질을 갖춰나간다. 최영이 공민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건, 그가 왕의 핏줄을 타고나서가 아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왕”이라서다.

 ‘대왕의 꿈’ 첫 회는 김유신(김유석)과 태종무열왕 김춘추(최수종)가 대립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군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간 김유신은 “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나라입니다. 신라 백성들을 당의 노예로 만든다면 내 손으로 용상에서 끌어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대풍수’에서 풍수지리와 관상에 도통한 명리학자 지상(지성)은 변방의 장수였던 이성계(지진희)를 도우며 얘기한다. “나의 왕은 내가 선택한다”고.

 ◆백성과 가까운 왕=‘신의’에서 공민왕이 대신들 앞에서 원의 복식을 벗고, 고려의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은 통쾌함을 준다.

그렇게 “더 이상 원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를 한 공민왕은 점점 강력한 왕으로 성장해가는 동시에 백성 속으로 들어간다. 역모 세력 때문에 궁 밖으로 내몰리자, 은신처를 아예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만든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왕의 꿈’은 김춘추가 어린 시절부터 백성의 고통에 민감했다는 사실을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어린 김춘추는 “나라의 흥망성쇠는 정치에 달려있다”고 성토하고, 화려한 연회를 즐기는 진평왕을 향해 “연회가 화려할수록 백성의 고통은 커진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민의에 대한 이해가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라는 얘기다.

  ‘대풍수’는 이성계가 변방에서 겪는 설움과 더불어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호방한 성격의 그는 거칠지만, 의리가 두텁고 아랫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TV평론가 김선영씨는 “대선을 앞두고, 사회개혁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있는 정의로운 지도자에 대한 대중들의 판타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이 혼란기이거나 국운이 쇠해가는 때로 설정된 것도 그런 지도자의 능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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