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용 권총 '인터넷 밀수'에 비상

중앙일보

입력

''테러용 권총을 밀수입하려는 전직 벤처직원을 잡아라'' .

경찰청 외사과가 지난 넉달간 은밀히 진행해온 공작이다.

3월 말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한 한국인이 미국 내 총기 구매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권총을 사려 한다'' 는 제보를 받으면서부터다.

미국 관세청의 사이버밀수 감시센터가 처음 감지해 대사관을 통해 전달한 첩보다.

대사관측이 함께 건네준 한국인 M씨(가명)와 미국인 G씨가 주고받은 e-메일이 유일한 단서였다. ''권총을 세 토막으로 분해해 보내면 세관에 걸리지 않을 것'' ''권총을 보내주면 대금은 물론 별도의 감사를 하겠다'' 는 내용.

주문한 권총은 ''Glock 26'' 이라는 소형제품이었다. 은밀한 휴대가 가능해 주로 테러범들이 요인 암살용으로 사용하는 기종이다.

e-메일의 토대로 총기구매자를 추적한 경찰은 그가 한 의료벤처업체 직원으로 얼마 전 퇴직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회사에 앙심을 품고 테러를 할지 모른다는 상상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미 당국과 공조수사를 통해 범인과 미국인 G씨가 주고받는 연락을 계속 추적한 경찰은 범인이 이달 초 돌연 총기 수신장소를 강원도의 모처로 바꾼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증거확보를 위해 현장 검거를 하기로 하고 인천공항 세관과 국제탁송업체에 협조를 요청했다.

권총은 주문대로 총열 부분만 지난 19일 종이박스에 담겨 항공 배달됐다. 인천공항 세관은 경찰과의 약속대로 물품을 무사통과시켰다.

경찰은 택배원을 가장해 강원도로 가 이를 기다리던 범인(李모.30)을 붙잡았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2년 전 3천만원을 챙겨 달아난 수입오토바이점 동업자를 협박해 돈을 받아내려 했다" 고 털어놓았다.

총기광(狂)이기도 한 그는 또 "처음엔 신원 노출을 피해 벤처회사에 다녔던 후배의 이름을 도용했지만 추적하는 낌새가 없어 강원도의 진짜 주소로 수신처를 바꿨다" 고 진술했다.

이씨는 미국인 G씨의 환심을 사려고 지난달에 선금 2백달러를 송금하면서 44장의 음란물 CD도 함께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그를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1일 구속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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