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열광시킨 '참 지도자' 옹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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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淸) 조 때의 옹정제(雍正帝) 는 중국의 유장한 왕조사에서 매우 특이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제왕이다. 그의 아버지 강희(康熙) 와 아들 건륭(乾隆) 의 부국강병 상태를 일컫는 이른바 '강건성세(康乾盛世) ' 에 끼인 인물이지만 그 치세의 업적은 부친과 아들의 그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친 강희가 벌여 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아들 건륭에 이르는 태평성세의 다리를 튼튼하게 놓았다는 점에서 그 둘을 능가하는 면이 없지 않다.

만주에서 발흥한 만주족의 왕권이 한족의 판도인 중국 땅에서 위상을 드높이고 빛을 내기까지에는 그 권력이 작동하는 여러 요소요소에 그의 철저하고 빈틈 없는 행정력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옹정황제』는 중국 문단에서 역사소설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월하(二月河 : 필명) 가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를 다룬 『제왕 삼부곡(三部曲) 』의 일부다.

일전에 국내에 번역.소개된 일본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에 견줘 보면 이 책은 우선 다루고 있는 정보의 양에서 일단 미야자키의 책을 압도한다.

미야자키의 저술이 사료 상의 기록을 재구성해 비교적 엄정하고 딱딱하게 옹정제를 그려내고 있는 데 반해 이월하의 저작은 풍부한 사료와 중국적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옹정이란 인물과 청대 궁중사의 복잡한 이면을 실감나게 묘사해 낸다.

『옹정황제』가 들어가 있는 이월하의 『제왕 삼부곡』은 중국에서 1억 권 이상이 팔렸다. 이 책은 중국 건국 후 가장 많이 팔린 책 50선(選) 안에서 39위를 차지했다.

텔레비전 사극으로도 제작됐던 『옹정황제』는 한국의 '모래시계' 열풍처럼 북부 중국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옹정제가 현재의 중국에서 새삼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현대 중국에서 '참 지도자' 의 모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밤 12시에 잠자리에 든 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하루 종일 집무에 매달렸고 정보계통을 철저히 장악해 관료부패의 싹을 잘랐던 옹정제는 현대 중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관료형 부패' 에 대한 중국인들의 '역사 속 대안 찾기' 에 해당할지 모르겠다.

옹정제가 35명의 형제 가운데 처절한 암투를 거쳐 용좌에 오르는 과정과 소수정권인 만주족의 황제로서 한족이 대부분인 거대한 관료체계를 장악하는 과정, 등극 후에도 거세게 밀려드는 형제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제도 개혁을 완수하는 도정 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정사에 나타나 있지 않은 옹정제의 여러 행적을 찾아내기 위해 중국은 물론 미국과 프랑스의 청대 야사(野史) 까지 뒤지고 다녔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무대는 청대 때의 중국이지만 정치권력을 가운데에 두고 벌이는 인간 파노라마가 우리의 시대적 상황과도 겹치면서 단순한 소설 읽기 이상의 재미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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