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달립니다 … 7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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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1급 중상이용사들이 16일 핸드사이클을 타고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출발해 서울 현충원에 도착하는 700㎞의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22명의 중상이용사는 경남 창녕 함안보 등 4대 강 자전거길과 대구 다부동 전적기념비,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을 돌며 나라사랑 정신을 전파할 계획이다. [송봉근 기자]

16일 오전 부산시 남구 유엔기념공원. 출발 신호와 함께 22대의 자전거가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6박7일 동안 국토를 종단하는 700㎞의 대장정이다. 바퀴 세 개가 달린 핸드사이클을 타고 달린다는 점이 보통의 자전거 행진과 달랐다. 핸드사이클은 두 발 대신 두 손으로 페달을 돌려 나아가도록 고안된 특수 자전거다.

 국토종단에 나선 22명은 전쟁터나 군복무 중에 부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중(重)상이 국가유공자들이다. 22명의 철완(鐵腕)들은 경북 다부동 전적지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등 한국전쟁 격전지를 거쳐 22일 서울 현충원에 도착하는 것으로 대장정을 끝낸다. 경유지마다 장애인, 상이용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간단한 행사를 갖는다. 참가자들은 전원 완주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달 전부터 서울 잠실운동장에 모여 하루 50~100㎞ 거리를 달리는 맹훈련을 했다.

 이들이 휠체어 대신 핸드사이클을 타게 된 것은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경험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재활스포츠를 통해 장애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체득한 꿈과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겠다는 것이다. 한태호(48) 중상이용사회 사무처장은 “장애인들에겐 희망을, 비(非)장애인들에겐 나라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6·25 격전지를 따라 국토종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하반신 마비로 인한 좌절을 강인한 의지로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다. 1967년 베트남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이석동(68)씨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을 입었는데도 사람들의 싸늘한 눈길이 두려워 집 밖으로 못 나가고 죄인 아닌 죄인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역시 베트남전에서 부상당한 송신남(68)씨는 “평생을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나”라는 절망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배우게 된 탁구가 삶을 바꿔놓았다. 송씨는 71년 영국 국제척수장애인체육대회와 72년 독일 장애인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라며 “탁구를 통해 인생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81년 군에서 사고를 당한 송구영(52)씨는 89년부터 10여 년간 장애인아시안게임 탁구 등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86년 9공수여단에서 사고를 당한 이억수(47)씨는 90년부터 장애인 올림픽 등에서 4개의 메달을 땄다. 그는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며 “내가 얻은 자신감을 다른 장애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이번 국토종단에서 꼭 완주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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