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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폴, 중독자 치료부터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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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남궁기
연세대 의대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에서 발생한 사체 유기 사건, 일부 연예인의 상습 사용과 사망, 여의사의 약물 과다 사용 사망, ‘우유주사 중독 아줌마’. 최근 신문 사회면에 속칭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프로포폴은 각종 성형 시술이나 내시경 검사 등 간단한 의학적 시술 시 널리 사용되는 정맥주사용 수면 마취제다. 간단한 마취에 흔히 사용되긴 하지만 투여했을 때 심박수와 혈압을 동시에 낮추고 과도하게 많이 사용할 때는 호흡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사의 관리 감독하에 사용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약물이기도 하다.

 프로포폴은 투여 후 짧은 시간 안에 효과가 나타나고 마취·수면에서 깨어났을 때의 안락한 느낌과 피로 회복감, 불안 해소 및 환각 등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어 약물 의존을 유발할 수 있다. 상습 사용자들은 약 기운이 떨어질 때 불면·불안·초조, 쉽게 흥분하고 쉽게 화를 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예전부터 ‘잘 쓰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이란 말이 있다. 프로포폴도 마찬가지다. 오·남용 사례가 있다고 해서 병·의원에서 시술 등에 사용하는 것 자체를 무턱대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프로포폴의 오·남용과 중독을 막기 위한 의료계와 보건당국의 노력이다. 프로포폴은 2011년부터 마약류 의약품의 일종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식품의약품안정청은 앞으로 프로포폴을 포함한 ‘마약류 의약품’을 공급받은 의료기관은 언제, 어떤 증상의 환자에게, 얼마만큼의 약을, 왜 처방했는지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식약청은 또 프로포폴 외에도 중독 가능성이 큰 의약품에 대해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시스템(DUR)을 도입해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통해 동일한 성분의 약물을 중복·과다 처방받을 수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런 제도가 방침으로 끝나고 실효성이 없으면 프로포폴 문제는 식약청 등 보건당국이 아니라 경찰로 넘어가는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다. 이 약물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의료계의 자정 노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프로포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일부 의료인에 대해서는 사법·행정당국뿐 아니라 의료계 내에서도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처벌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오히려 ‘쫓고 쫓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강화돼 중독자들은 치료에서 멀어지고 반복되는 범죄의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잇따라 발생하는 프로포폴 오·남용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한 프로포폴 중독성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언론에서 ‘신종 마약’ ‘환각 효과’ 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면서 프로포폴 중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퍼지는 것도 문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스트레스가 있거나, 평소 우울감이나 불안 등의 정서적 증상이 있는 사람, 또 직업상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프로포폴 같은 약물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따라서 평소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불법 약물중독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하루빨리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약 현재 프로포폴을 몰래 구해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다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궁기 연세대 의대 교수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