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슬쩍 덮은 가금육 분쟁

중앙일보

입력

"수입금지 조치를 완전 해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만 푼다는 점을 꼭 밝혀주세요. "

5일 중국산 닭.오리고기 등 가금육(家禽肉)에 대한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풀면서 농림부 관계자들은 정부의 입장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달 4일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중국산 가금육에 대한 금수 조치를 결정하며 '국민 보건 문제에 관한 한 양보란 있을 수 없다' 던 강경 자세와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농림부는 "11개 지역에서 들어오는 중국산 가금육 중 바이러스가 검출된 두 지역은 여전히 수출이 금지된다" 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두 지역도 앞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경우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 맞춰 금수 조치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내다봤다.

농림부는 수입 가금육 4천여t 때문에 중국 수출 길이 막히는 제2의 마늘 파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지적에 "통상과 검역은 별개의 문제" 라며 입장을 고수할 것임을 밝혔었다. 지난달 말 중국을 방문한 국무총리도 중국의 항의에 대해 "통상 문제로 확대하지 말고 검역 차원의 기술적 문제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대응했다.

중국 정부가 "일부 지역의 문제로 중국 전체의 수출을 사전 통보도 없이 막을 수 있느냐" 고 항의하자 "필요하면 한국에 와서 검역결과 자료를 직접 확인하라" 고 했던 것이 불과 20여일 전이다.

그러나 농림부는 금수조치 이후 중국이 한국산 라이신 제품 등에 대한 덤핑 조사를 시작하는 등 통상마찰의 조짐이 일자 당황했다. 결국 금수조치 한달 만에 더 이상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수입을 다시 허용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세계화 추세 속에서도 세계 경기가 어려워지며 교역규모가 줄어들자 곳곳에서 통상 마찰이 생겨나고 있다. 마늘에 이어진 이번 가금육 파동은 상대국이 있는 대외 정책은 나라 안팎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분석과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홍병기 기자 klaat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