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 직물업계 자구책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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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서공단 P섬유.

나일론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지난 5월부터 공장 2동 중 1곳(직기 1백대)을 완전히 세웠다.

올들어 공장 안팎에 쌓이기 시작한 재고가 이 회사의 서너달치 물량인 4백만야드로까지 불어난 때문이다.

이 회사 김모(55)사장은 "직물업계에 뛰어든지 26년째지만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한해 3천만달러씩을 수출했으나 올해는 1천만달러도 채우기 어려울 전망이다.올들어 직원도 80명에서 50명으로 줄였다.

김사장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직원들의 사기마저 뚝 떨어져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2:달서구의 S산업.

지역 직물업계에서 '앞서 간다'는 평을 듣는 이 업체도 올들어 부쩍 위기를 느끼고 있다.

지난해부터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를 도입하고 패션업에도 진출했지만 올들어 수출 오더가 뚝 떨어지면서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경우 올들어 수출물량이 20% 이상 줄었지만 유럽 ·미국 시장이 가라앉아 있는 데다 중저가제품의 경우 더이상 중국 ·동남아 제품과 경쟁하기 어려워 '출구가 안보이는' 상황을 맞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조만간 대구 섬유업계에서 피할 수 없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 고비에서 일단 살아남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올들어 대구 ·경북지역 직물업계가 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다.

세계 직물시장에서 중국 ·인도네시아산 제품 등과 비교,가격 경쟁력이 크게 차이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에서의 열세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격차가 20% 이상으로 벌어져 지역 직물제품의 수출시장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3일 대구세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지역 직물 수출실적은 2억6천5백6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억3천7백74만달러)에 비해 22% 줄어들었다.

이같은 감소세는 지난해 6월(2억9천7백73만달러)이후 1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 1월에는 전년 대비 30%나 감소한 1억6천4백만달러에 그쳤으며 2월부터 4월까지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6.3%,12%,16%씩 각각 감소했다.

이에따라 지역 직물업체들은 잇따라 직기가동 중단,감원 등의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직물업계의 이같은 불황은 당장 염색 등 연관산업으로까지 불똥을 튀기고 있어 지역경제 전망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대구 서구 비산동 염색공단의 C염직 사장 이모(44)씨는 "올들어 염색가공 물량이 지난해보다 40% 줄었다"며 "일감이 줄다 보니 가공료도 10% 이상 떨어져 제품 고급화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주현 대구시 섬유진흥과장은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며 "이제부터라도 섬유 후발국과의 품질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본격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환 ·홍권삼 기자einbaum@joongang.co.kr>

*** 하영태 대구경북견직물조합 이사장 인터뷰

"40년간 섬유업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어렵기는 처음입니다."

하영태(夏榮兌 ·65)대구경북견직물조합 이사장은 올들어 지역 직물업계가 겪고 있는 불황을 "벼랑에 몰린 형세"라고 표현했다.

-요즘 지역 직물업계의 실정은.
"지난 5월부터 업체들마다 평균 40%씩 직기를 세운 상태다.그전 같으면 일시적으로 재고가 쌓여도 지역 주종산업이라는 긍지로 참고 버텼으나 지금은 사뭇 다르다.머쟎아 추석이 닥치면 수출 오더를 받지 못해 공장 문을 닫는 흑자부도가 잇따를 것이다."

-불황의 가장 큰 요인은.
"10여년전 일본 직물업계가 당했던 것의 재판이다.그 당시 일본이 '한국 때문에'라고 했듯 요즘 우리는 '중국 때문에' 코너에 몰리고 있다.최근 들어서는 국내 봉제업계도 중국산 원단을 사다 쓰는 실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기술개발과 제품 차별화를 쉽게 말하지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일본은 과거 직물도시인 후쿠이현에 2천억엔을 들여 연구소를 세웠지만 우리는 현재 시중금리보다 높은 정책자금도 은행의 평가가 낮아 제대로 못 쓰고 있다.결국 개별기업이 스스로 활로를 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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