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박근혜 단독 플레이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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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허 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캠프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는 하는데 딱 부러지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7일 오전 새누리당의 친이명박계 전직 의원에게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할 거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온 답이다. 경선에서 비박(非朴) 주자를 도왔던 그는 “당연히 박 후보를 돕고 싶다. 그런데 선거대책위 차원에서 통일된 의견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가 아직 정리를 안 해줬겠지”라고 덧붙였다.

 대선을 70여 일 남긴 요즈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주변에선 혼선과 불통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계 2선 후퇴론’으로 내홍을 겪다가 이른바 ‘실세’로 꼽히는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이 사퇴했고, 국민대통합의 취지에서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영입하자 대법관 출신의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반발했다. 구멍 하나를 간신히 메우면 다른 데서 또 구멍이 생기는 형국이다.

 이런 엇박자의 원인을 당 안팎에선 “‘박근혜 1인 체제’의 한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박 후보 대신 당과 캠프를 안정시킬 ‘좌장’은 없고, 박 후보가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방사형 구조의 부작용 때문이란 지적이다. 박근혜계 핵심 의원과 ‘의원보다 센 보좌진’으로 불리는 일부 측근이 중간에 있기는 하지만 박 후보가 직접 결정을 내려주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기 의견을 드러내놓고 밝히기를 꺼린다. 한광옥 전 고문의 영입 과정에서 핵심 측근들조차 내용을 잘 모른다며 “후보만 안다”는 말을 되풀이한 게 그 예다.

 박 후보 주변의 ‘눈치보기’는 박 후보가 자초한 면이 있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비상대책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박 후보는 ‘보안 제일주의’ 행태를 보여왔다. 당시 비대위원 인선 내용이 미리 언론에 유출되자 그는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의 ‘촉새’ 발언은 이후 4·11 총선 공천심사위, 대선 캠프 구성 때마다 측근들의 입을 막는 접착제 노릇을 했다.

 지난달 박 후보는 2030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인기 프로그램인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을 타진했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역할을 했지만 KBS 측의 반대로 출연은 결국 무산됐다. 캠프 내에선 “후보 비서실장이나 대변인도 모르게 일이 추진됐다. KBS와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당 내부에 있는데도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박 후보는 7일 오후 기자들을 만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각자가 선 자리에서 ‘나는 당의 승리를 위해 그동안 뭐를 열심히 했는가’, 또 ‘내가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걸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닌 박 후보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 당과 캠프가 움직이는 상황에서 박 후보의 주문을 제대로 실천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