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 손실 확정, 미룬다고 능사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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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22면

경기도에 사는 김상주(가명·49)씨는 집이 한 채 있는 상태에서 몇 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세 주고 적당한 매도 시점을 봐 왔다. 그런데 지나해부터 이 지역 아파트 시세가 가파르게 떨어지더니 급기야 분양 시점 대비 절반 가까이로 폭락했다. 새 아파트 시세가 분양가 이하로 내려가는 ‘마이너스 프리미엄(premium)’ 상태가 됐을 뿐 아니라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됐다. 여기에 입주 기간 3년이 되면서 은행에 대출 이자 외에 원금을 상환하게 됐다. 곧 50대에 진입하는 그는 신용불량 직전에 이르렀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대출금과 전세금 모두 되돌려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상영 교수의 부동산 오디세이

A씨의 처지는 요즘 우리 주변의 일상사가 됐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주택가격 회복만 기다리기보다 금융권이나 정부의 구제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집주인이건 돈을 꿔준 금융회사건 손실 실현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세일&리스백(sale and lease-back)’이 여름부터 부쩍 회자된다. 집을 판 뒤 다시 임대하는 식의 부동산 유동화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꽤 많이 동원된 방식이다. 하지만 금융권과 여권이 주도하는 이 방안에는 난관이 적잖다. 당국은 ▶재정 부담이 많고 ▶무주택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이후 변형된 세일&리스백 방식이 제시됐다. 금융회사에서는 지분을 관리처분신탁으로 맡기는 ‘트러스트&리스백(trust and lease-back)’ 방식을 제시했다. 즉 은행이 주택을 사지 않고 그 관리를 신탁함으로써 매입 부담과 리스크를 덜 수 있고, 집을 신탁한 사람은 소유권을 둔 채 임대료를 내면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3~5년 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그때 은행은 이 집을 처분해 대출금 일부라도 회수한다. 이는 세일&리스백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은행의 담보물건 매입 부담을 덜 수 있다. 대출받은 사람들도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집을 급히 팔거나 경매당하는 위기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도 많다. “눈에 뻔히 보이는 손실을 실현시키지 않고 매각만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신탁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가계부채 위기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세 든 사람이 있는 주택은 이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곤란에 처한 주택 중에서 활용할 만한 대상이 적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 대책을 보자. 세일&리스백을 응용한 지분매각 제도나 주택연금 사전 가입 제도 등이 포함돼 있다. 지분매각 제도는 공공기관이 하우스 푸어 소유 주택 중 대출채권 부분만 매입하고, 사들인 지분을 자산유동화증권(ABS)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그런데 ABS를 사줄 투자자를 모으려면 이 증권에 대한 지급보증이 돼야 한다.

공적 기관이 배후에 있어야 투자자들이 믿고 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 대출자에게 저리 대출을 하려면 투자자에겐 지급보증이 된 신용등급 높은 증권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은 공적자금이 지원돼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통해 국가가 개입할 당위성을 얻는 건 쉽지 않다. 과거 공적자금을 투입한 경우는 은행 등 금융권 부실을 막으려는 것이지, 개인의 주택 투자 실패에 대해 이처럼 개인 빚을 직접 사들이는 방법으로 대응한 사례는 드물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직 ‘발등의 불’이 아니라 이런 대책이 당장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현재 나온 방안이 가계부채 위기를 해결할 전가의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히려 어느 정도 손실을 서로 확정하는 방식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숏 세일(short sale)’은 어떨까. 돈을 꿔준 금융사가 대출금 이하로 주택을 파는 걸 동의해주고, 이 매각대금 회수만으로 대출금 상환을 인정하는 것이다. 수년 전 미국이 불황기의 정점이었을 때 시장 매물의 3분의 1은 이런 숏세일이었다.

우리나라도 주택 경매 시한을 늦춰줘 주인이 집을 한 푼이라도 더 받고 팔 말미를 주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매에 부치면 낙찰가가 워낙 낮아지기 때문에 경매 이전에 일반 시장을 통해 팔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 금융권 압류 물건이 되기 전 매각하는 방법, 압류 후라도 그저 경매법정에 넘겨지지 않고 직간접 경로를 통해 소화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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