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만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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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밀레, 만종, 55.5×66㎝, 1857~59년, 파리 오르세미술관

석양을 등진 채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였다. 쇠스랑도 손수레도 잠시 내려놓고 선하게 두 손을 모았다. 멀리 지평선은 영원으로 이어지고, 저 끝에 그림자처럼 작게 보이는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울릴 듯하다. 안 봐도 다 알 것 같은 익숙한 이미지, 밀레(1814~75)의 ‘만종(晩鐘)’이다. 원제는 ‘삼종기도(L’Ang<00E9>lus)’ 혹은 ‘삼종경(三鍾經)’. 아침·정오·저녁 이렇게 하루 세 번 울리는 교회 종과 그때 드리는 기도를 이렇게 부른다.

 박수근은 어릴 적 이 그림을 접하고 “밀레 같은 화가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단다. 나목(裸木) 아래 아이 업은 여인처럼 운명에 순응하는 이들을 즐겨 그렸다. 그의 목가적 풍경은 밀레의 그림이 자아내는 분위기와도 통한다. 반 고흐 역시 ‘만종’을 보고 “이것은 시(詩)”라며 감탄했다. “가장 위대한 화가는 밀레”라고도 했다. 화가들만이 아니다. 한국의 이발소에서도, 세계 각국의 낙농 제품 상표에도, 달력 그림으로도 ‘만종’은 널리 복제되며 사랑받았다.

 밀레는 생전에 “만종이 울리면 고된 일을 잠시 멈추고 가엾게 죽은 자들을 위해 경건히 삼종기도를 올리게 하셨던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라고 술회했다지만, 원래는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으로 당시 농가의 비참함을 고발한 그림이라는 설도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제기한 주장으로, 후에 X선 검사를 통해 초벌 그림에서는 부부 앞의 씨감자 바구니 대신 상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상자를 아이의 관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만종’은 이렇게 밀레 사후에도 끊임없이 회자된 그림이다.

 곧 추석이다. 누렇게 흔들리는 벌판을 만나기에 앞서 길을 꽉 메운 자동차의 행렬로 명절을 느끼는 게 도시인이다.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의미는 퇴색하고 형식만 남은 농경문화의 유산이라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게 명절”(철학자 강신주)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이젠 1년에 한 번 수확의 기쁨을 누리던 농부의 자식도 드물다. 그러니 추석이 감사보다는 의무로 다가올 법도 하다.

그러나 수확의 기쁨은 몰라도 ‘만종’의 정서에는 공감한다. 가을이 왔고, 신이 가까이 있다는 느낌 말이다. 그래서 더 떠올리고 싶다. 하늘과 땅에 겸허히 감사하는 저 농민 가족처럼, 모처럼 성찬을 마련해 신나게 기름에 지졌을 저 옛날 대가족의 기쁨을. 그때의 추석에는 열 시간 넘는 교통 체증도, 1년에 한두 번 만나니 튀어나오는 “결혼 안 하느냐” “애는 언제 낳느냐” “그 집 애는 공부 잘해요?” 같은 안 하느니만 못한 말들도 없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