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시위 없는 다롄, 중국 도시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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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에 항의하는 반일 시위로 중국 전역이 들끓었던 지난주,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등 전국 100여 개 도시에서 대규모 과격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중국 내 일본 특구’인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서는 이례적으로 단 한 차례도 반일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23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다롄에서는 반일 시위를 경계하는 무장경찰과 공안당국자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식당이나 일본 기업들도 휴업하지 않았고, 일본어 간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위대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일식당과 일본 기업체들은 일본어 간판을 가렸고, 일본산 자동차는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달고 운행하기도 했다.

 과거 40년간 일본 식민지배를 당한 다롄에는 일본어가 유창한 사람이 많다. 모든 대학에 일본어과가 개설돼 있고, 일본어 학원이 많아 중국 내 일본어 교육의 거점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다롄역은 도쿄 우에노(上野)역을 모델로 지어졌다. 외국 자본의 3분의 1을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17만여 명을 현지 고용하고 있다. 다롄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일본에 유학한 사람도 많고, 일본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의 가족·친지도 많다.

 다롄시에서 반일 시위가 발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시 당국이 시위를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다롄시 당국은 일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 이전부터 반일 시위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은행은 행원들에게 시위 참가를 금지했고, 각 대학도 학생들에게 시위에 가담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다롄시에서는 지난해 8월 유독물질을 배출한 화학공장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해안가에 위치한 푸자다화(福佳大化)석유화학 공장 주변 방파제가 붕괴해 화학섬유 원료인 파라크실렌(PX)의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자 시민 1만2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공장 이전을 요구했다. 시위는 무력 시위로 번졌고 홍역을 치른 다롄시 당국은 이후 대규모 시위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또 다롄은 실각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1990년대 시장을 지냈던 곳이다. 보시라이는 당시 많은 일본 기업을 유치했고, 현지 경제를 발전시킨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반일 시위가 자칫 보시라이 재평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시위 차단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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