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살리려면 ‘가치소비’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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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영(34·서울 반포동)씨는 최근 딸을 위해 수입 유모차를 사려다가 포기했다. 가격이 190만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중고품 구입으로 마음을 돌렸다. “하나뿐인 딸에게 최고를 사주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다”고 유씨는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해외 브랜드 유모차의 국내 판매가를 다른 나라와 비교했더니 최대 2.2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S브랜드의 유모차가 미국이나 스페인에서 137만원인 반면 국내에서는 180만~190만원대에 팔렸다. 공정위 발표 후 몇몇 유모차 수입업체는 가격을 10~15%씩 내렸지만 대부분 업체는 기존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은 너무 비싸고 싼 물건 중엔 살 만한 게 없다. ‘싸고 좋은 것’은 소비자의 로망이기도 하다.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요즘엔 ‘싸고 가치 있는 것’을 찾는 ‘가치소비’에 소비자 관심이 높다. 유통업체들도 이에 맞춰 가격 거품을 빼기 시작했다. 신세계가 최근 선보인 영국 생활용품 브랜드 존루이스는 침구가 10만~20만원대, 와인잔이나 접시 등 식기가 1만~4만원대다. 국내 브랜드보다 싸다. 타 브랜드 제품보다 20~30% 싼 남성 캐주얼 브랜드 ‘일 꼬르소 델 마에스트로’를 내놓은 LG패션 김상균 상무는 “가격에 비해 가치가 있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제화의 가방 ‘브루노말리’와 코오롱패션의 가방 ‘쿠론’도 400만원 하는 명품백 가격보다 훨씬 싼 60만원대 가격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나광식 한국소비자원 물가조사팀장은 “소비자도 가격 대비 품질을 꼼꼼히 따지는 가치소비를 해야 내수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을 애용하자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울림이 크지 않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쇼핑 습관이 바뀐 점을 감안해 전통시장도 유기농 농산물, 시장 특화상품, 로컬 식품 등의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와 업계뿐만이 아니다. 정부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잘못된 시장구조로 인한 가격 부풀리기를 막는 일이다. 예컨대 해외 유명 화장품은 국내에만 들어오면 비싸진다. 서울 YWCA가 이달 중순 수입화장품의 국내 가격을 조사한 결과 미국·호주보다 두 배 이상 비쌌고 일본과 비교해도 4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산 에스티로더나 키엘·크리니크 등의 백화점 판매가는 미국 현지보다 평균 1.5~2.3배나 높았다. 강민아 서울 YWCA 소비자환경부장은 “미국에서 국내로 들여올 때 붙는 6.5%의 수입관세를 감안하더라도 턱없이 부풀려진 가격”이라고 말했다. 강 부장은 “정부가 유통구조 관리를 강화하고 병행 수입 등을 더욱 활성화해 시장 경쟁 압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서경호(팀장)·최지영·김영훈·김준술·장정훈·한애란·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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