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앙일보

입력

피터 그륀버그 교수가 한국 학생들의 주니어 세션 주제발표가 끝난 후 자신의 생각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나도 천재는 아니랍니다. 단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노벨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14일 공동 주최한 World Class University 주니어 세션 행사에서 20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피터 그륀버그(Peter Gruenberg) 교수가 “노벨과학상은 천재들만 받을 수 있는 상인가요?” 란 질문에 한 답이었다. 200여 명의 초중고생들이 참석한 이 행사는 세계적인 석학들과 만남을 통해 과학자에 대한 꿈을 키워주기 위해 개최됐다. 그륀버그 교수는 손을 떠는 등 몸이 불편했지만 과학 꿈나무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후 그륀버그 교수를 만났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해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느냐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연구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은 것 같다. 실패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시작한다면 결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집중하다 보면 과학자로서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지.

“그 질문도 두 번째로 많이 받았다.(웃음)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항상 아침 일찍 실험실로 향했다. 누가 시키거나 의무감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즐거웠기 때문에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즐겼기 때문에 각종 상이 자연스레 따라 온 것이라 생각이 든다.”

-한국 학생 4명이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다. 어떻게 보았는지.

“우선 영어구사 능력이 수준 이상이었다. 발표 내용도 창의적이어서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프레젠테이션 페이지를 만들 때 항상 시각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논증이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상대방에게 보여주며 설득하기 위해선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항상 함께 정리해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실험결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노벨상 수상자만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이 있을 것 같은데.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다. 아들은 트럭회사에 다니고 있고, 딸들은 가정주부와 수학자다. 연구에 매달린다고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많은 것을 해주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생길 때면 항상 함께 할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해 설명을 해주곤 했다. 예컨대 호숫가에서 돌을 던진다. 그럼 표면의 장력 때문에 ‘물 수제비’ 현상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질문을 해보고 자신이 생각한 이유를 말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한국이라면 노벨상 수상자 자녀가 트럭회사에 다니는 것이 큰 뉴스거리가 된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개인의 재능과 학교 공부는 다른 것이다. 아들의 경우 자동차와 수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본인이 하고 싶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한다는 점에 나는 만족한다. 한국 교육과정은 일본과 비슷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론이나 보고서를 통해 접한 인상은 주입식 교육이라는 점이다. 학생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교육 환경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주고 이해를 유도하는 교육방식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위대한 과학자는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천재성을 타고난 과학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특히 대기만성형 과학자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너무 일찍부터 학업경쟁에 내몰려 기회가 닫혀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들도 그와 비슷한 경우다. 상식도 풍부하고 똑똑했지만 유독 시험에 약했다. 실수도 많이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 발전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관용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발전할 수 있는 인재가 기회를 얻지 못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정말 아쉬울 것이다.”

- 마지막으로 과학자를 꿈꾸는 한국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열심히 파고 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항상 더럽게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깨끗한 도화지가 있다. 똑같이 크레파스를 주고 그림을 그려보라 했을 때, 이것 저것시도해 본 학생은 도화지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분명 얻어가는 것이 생길 것이다.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으면서 개선할 부분은 찾아내고 이를 연구에 반영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위대한 과학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번도 포기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어려움에 부딛혔지만 극복해 나갈려고 노력했다.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 그륀버그 교수=2007년에 자성소재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Research Center Julich Germany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GIST(광주과학기술원) 나노바이오재료공학과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GIST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글=김만식 기자 nom77@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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