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중동 기독교도의 시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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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29면

우리는 중동 하면 이슬람만 떠올리기 일쑤다. 실제로 대다수 주민이 무슬림(이슬람 신자)이다. 하지만 이슬람 탄생 전부터 신앙을 유지해온 기독교도 공동체가 지금도 존재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추산된다. 사실 중동은 기독교가 태동하고 초기에 전파된 곳이지 않은가. 20세기 초에는 기독교도 비율이 20%까지 이르렀지만 박해를 피해 미국 등으로 상당수가 이주했다. 게다가 무슬림보다 출산율이 낮아 인구 비율이 차츰 낮아졌다. 중동 전체에 현재 1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기독교도는 2020년께 600만 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국가별로 기독교도 비율은 물론 종파도 다양하다. 서방 세계에는 없는 독특한 기독교 종파도 적지 않다. 우선 이집트는 인구의 10% 안팎인 600만~1100만 명이 콥트 기독교도로 추정된다. 중동 국가 가운데 기독교도가 가장 많은 나라다. 대도시에선 교회 십자가와 모스크의 초승달 문양이 나란히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레바논은 380만 인구 중 기독교도가 39~48%로 추정된다. 가톨릭과 동방정교도 있지만 대부분 마론파다. 예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은 부인하는 데서 유럽 기독교와 확연히 다르다. 콥트도 마찬가지다. 1944년 프랑스 위임통치로부터 독립할 무렵에는 기독교도가 다수였지만 낮은 출산율 때문에 무슬림에 역전당했다. 의회는 최근까지 기독교도가 장악했고 총리직도 도맡아왔다. 지금은 이슬람·기독교·드루즈교 등이 공존하는 다종교·다문화 사회다.

지금 세습정권에 의한 국민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도 기독교도가 상당수다. 2000만 인구의 10% 정도다. 시리아 정교, 그리스 정교는 물론 가톨릭까지 다양한 종파가 있다. 이라크에서도 북부 지역에 기독교도가 산다. 아시리아 정교도다.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그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라크 침공 전인 2003년에는 80만~120만 명으로 추정됐으나 현재 40만 명 정도로 줄었다. 대부분 박해를 피해 이 나라를 떠났다.

중동 기독교도들은 대부분 교육·경제 수준이 높고 정치적으로 온건파다. 테크노크라트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20세기에 미국과 캐나다·호주 등으로 대거 이민을 떠나 현지에서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중동 민주화 이후 기독교도들이 시련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독재정권은 한결같이 종교에 무관심한 세속주의 정권이었다. 이 때문에 무슬림과 기독교도를 별로 차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뒤 기독교도는 세속주의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무슬림의 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황당한 역설이다. 예상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비극, 군사용어로 말하면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다. 이들이 신념이나 믿음 때문에 차별당하고 박해받는 것은 인류사적 비극이다. 서방에선 이들이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게 민주화라고 생각하지만 중동에선 이슬람화와 민주화를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쉽게 풀기 힘든 난문·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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