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사외이사는 경영자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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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경제민주화 논의가 ‘금융회사를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경영하게 하자’는 데까지 진전된 것 같다. 금융회사의 경우 이사회가 모든 임원을 임면하고 임원 후보도 추천하도록 하며 여기서 사외이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하자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법안이 나온 배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강화 흐름과 저축은행 사태로 드러난 문제의 심각성 등이다. 그런데 좀 과하고 엉뚱하다.

 주식회사는 이사회가 경영한다는 것이 회사법의 기본 원칙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원칙은 주주총회가 회사를 경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사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사내이사가 3명인 소규모 회사는 이사회가 직접 회사를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고 사외이사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런 모델은 작동될 수 없다.

 두세 달에 한 번 모이고, 각자 본업이 있는 사외이사가 다수인 이사회가 어떻게 경영 전반을 챙길 수 있는가? 그래서 1976년에 버클리대의 아이젠버그 교수는 이사회가 대규모 상장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사회를 경영진을 감시하는 기구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기업들이 이러한 방안을 수용한 것이 ‘감독형 이사회’ 모델이다.

 우리가 아는 감사위원회 중심의 이사회가 여기서 유래한다. CEO는 이사회가 선임하지만 복수 후보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분쟁상황이 아니면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일반 임원의 임면은 CEO에게 위임된다. 이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며 우리나라 회사 실무도 같다.

 사외이사들이 경영 현안을 다 챙길 수는 없지만 이사회 안건에 대한 심의와 결의를 통해 상당한 경영감시가 이루어진다. 1997년을 전후해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이사회는 사장실에 맡겨놓은 도장을 의사록에 찍는 서류상 작업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외환위기라는 대가를 치르고 회사 실무가 많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어느 시기에도 사외이사가 회사의 경영 판단을 주도하고 경영권의 핵심적 부분인 경영진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인사는 핵심적 경영판단이다. 전문성·시급성이 수반된다. 인사권은 리더십의 원천이기도 하다. 위계질서를 유지시키고 업무의 효율성과 직결된다. 이것을 사외이사들에게 맡길 경우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

 우선 임원과 사외이사 간의 사회적 관계를 변질시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다. 임원과 사외이사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에 따라야 좋다. 인사권을 가진 사외이사를 회사 사람들이 가만 둘 리 없다. 사외이사들이 사내 권력투쟁에 연루되게 된다. 사외이사가 사내 그룹들 간 역학관계를 잘 파악해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과도한 규제가 시도되는 느낌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동원된다. 대주주의 영향력이 차단되고 사외이사가 경영하는 금융회사는 저축은행 사건 같은 것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 금융회사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서둘러 투자를 회수할 것이다. 금융회사에 이 제도가 도입되면 비금융회사와의 본질적인 규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특별법 자체가 세계에 유례가 없다.

 국내에서 이사회 권한 강화는 주인 없는 은행의 은행장 선임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막고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은행법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증권·보험 등 대부분 비은행 금융회사는 대주주의 경영진 통제가 이루어지므로 은행과 동일한 차원의 제도는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더구나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권한 강화는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경영의 지속가능성도 약화시킬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