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얼굴 복잡다단한 표정 베니스를 홀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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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06면

17년 만의 영화 출연작이라고 했다(2005년 특별출연한 ‘소년, 천국에 가다’를 제외한다면 1995년 ‘맨’ 이후 처음이다. 17년이 맞다). ‘김기덕 감독은 왜 조민수(47·사진)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까’라는 질문은 오로지 정상적인(?)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얘기다. 김기덕의 영화를 놓고는 이렇게 질문해야 오히려 맞다. 조민수는 왜 간만에 나오는 영화인데 하필 ‘극악한’ 장면을 많이 찍기로 유명한 김기덕의 작품을 택했을까.

영화 ‘피에타’의 월드스타 조민수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끊임없이 타전돼 왔던 소식은 조민수의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시된다는 것이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많은 사람이 ‘피에타’를 보지 못했을 때였다. 설마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응당 기대해 볼 만하다고들 했다. 그만큼 조민수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특히 후반부에서 그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변신을 해낸다. 조민수 때문에 영화는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심지어 공포의 분위기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숨을 죽인다. ‘피에타’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탈 만큼 거대한 ‘한 방’이 있는 영화인 게 분명하고 그 한 방에는 조민수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솔직히 김기덕의 영화는 데뷔작 ‘악어’에서부터 이번 신작 ‘피에타’에 이르기까지 18편 내내 대사가 생경하기 짝이 없다. 그의 대사는 일상적 언어에서 살짝 비틀린 지점에 서 있다. 구어와 문어의 어중간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흔히들 “날것 같다”는 표현들을 쓰지만 그보다는 문명과 야만의 중간어쯤 되는 투다. 그리고 그건 김기덕 스스로의 의도적인 말버릇일 터이다. 감독 본인이야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사를 내뱉고 그런 톤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로서는 죽을 맛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조민수는 복잡다단한 표정연기로 마음속 언어를 전한다.

조민수는 영화에서 사람들의 신체를 담보로 고리대금업 해결사로 살아가는 이정진, 곧 이강도의 엄마 미선 역으로 나온다. 등장에서 퇴장까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게 처음엔 다소 과잉처럼 보인다. 갓난 아기 때 버려놓고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식 앞에 나타나서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구한다. 그게 눈물만으로 해결될까.

영화는 처음엔 매우 단선적인 스토리인 척 진행되지만 사실은 전복의 이중구조를 감추고 있다. 궁극적 주제는 측은지심이다. 김기덕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극단적 천민성”을 운운했지만 사실 이는 맥거핀(macguffin·의도적인 속임수)이다. 이 영화에는 모두가 불쌍하다는 슬픔이 관통한다. 그 때문에 조민수는 계속해서 운다. 나중에는 그 울음의 진의가 가슴을 친다. 그녀의 울음에 동참하게 된다.

조민수의 필모그래피는 짧다. TV 쪽 활동이 많았다. 그녀만큼 변화무쌍한 마스크를 가진 여배우는 드물다. ‘아스팔트 사나이’나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등의 드라마에서는 밑바닥 인생이나 다방 마담 이미지다. ‘피아노’ 같은 드라마에서는 지고지순한 여성상이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느냐, 아니면 파마 머리를 하느냐에 따라 그녀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오간다.

‘피에타’는 조민수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큰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은 기이한 재주가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앞으로 다른 많은 영화에서도 그녀를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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