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권한 없는 요리사는 슬프다

중앙일보

입력

히스패닉의 대부 펠리페 알루 감독이 해임 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부진. 그러나 92년부터 지휘봉을 잡아온 알루감독은 94년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감독으로 평가받아 왔다.

만일 그가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아닌 다른 팀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빼어난 지도력으로 팀을 일궜다면 팬들에게 강한 어필을 하는 감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의 해임은 석연치 않다. 만일 성적부진을 거론한다면 단장을 해임했어야 옳은 일이다. 선수단 구성의 책임은 단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비싼 대가를 들인 이라부 히데키나 터무니없는 연봉으로 장기계약을 해버린 그렘 로이드는 감독이 원해서 데려온 선수들이 아니다. 올 시즌 부진을 거듭하다가 부상을 당한 페르난도 타티스 역시 단장의 기습적인 트레이드의 결과다.

그러나 엑스포스에는 미래가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감독을 중심으로 탄탄한 팀웍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가 진정 자신의 돈 보따리를 풀어놓을 생각이 있다면 완벽한 팀웍을 이끌고 있는 알루 감독의 해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걷지도 못하는 선수를 데려다 놓고 뛰지 못한게 한다고 책임을 묻는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주는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일개 요리사에 불과하다.

이유야 어쨋든 9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마이크 하그로브(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를 해임한 이후 지난 해 테리 프랑코나(전 필라델피아 필리스), 진 라몬트(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잭 맥키온(전 신시네티 레즈), 벅 쇼월터(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데이비 존슨(전 LA 다저스)이 소속 팀에서 해임됐으며 올 시즌에는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의 래리 로스차일드 감독을 시작으로 자니 오츠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의 사임과 존 볼스 플로리다 말린스 감독이 해임 되는 등 올 시즌 역시 성적부진에 따른 해임의 칼날은 날카로움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알루 감독의 해임에서 처럼 상당수의 감독은 터무니 없는 재료를 가지고 호화찬란한 요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옷을 벗어야 했다.

하그로브의 경우도 결과가 중시됐다. 인디언스의 문제는 빈약한 선발진이였으나 단장인 존 하트는 그것을 간과했고 결국 디비전 시리즈에서 패하고 말았다. 어느하나 믿을 만한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포스트시즌을 치른다는 것은 승부의 반쯤은 이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하트는 하그로브를 해임시켰고 이듬해 그토록 원했던 척 핀리를 영입했으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돌풍에 말려 포스트 시즌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존슨이나 로스차일드 또한 같은 이유였다. 존슨은 실력에 비해 과한 연봉을 받고있는 선수들로 골머리를 앓았으며 성적이 좋지못한 것은 당연지사다. 로스차일드역시 척 라마의 터무니 없는 재료들을 제대로 요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해임되고 말았다.

그나마 선수단 구성의 일부 권한을 쥐고 있던 벅 쇼월터는 억울함이 덜할것이지만 나머지 감독들은 성적부진이란 허울좋은 명분을 목에 걸고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러나 단장들은 사정이 다르다. 입이 말썽인 케빈 말론(전 LA 다저스)만이 사임의 모습을 빌어 해임 됐을뿐 하트는 자신의 의지로 보좌역으로 물러났으며 나머지 팀들의 단장들은 아직도 현직에 남아있다.

재료가 시원치않아 요리를 하지 못한다면 구매담당을 문책해야 함에도 요즈음의 메이저리그에서는 그 책임을 요리사에게만 지우고 있다.

힘 없는 요리사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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