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딸이랑 재즈 정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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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이정식(右)씨는 딸 발차씨에게 “명성과 돈을 좇기 보다는, 재즈의 정신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음악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아빠가 무서운 분이란 건 재즈를 시작하고 나서 알았어요."

재즈 피아니스트 이발차(25)씨는 재즈 색소폰의 대명사 이정식(45)씨의 딸이다. 몇 년 전부터 재즈 클럽 등지에서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자로 호흡을 맞춰왔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재즈 부녀.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껏 부녀지간이란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다는 괜한 편견 섞인 말을 들을까봐서였다. 이제는 부녀지간이란 사실을 밝혀도 좋을 만큼 딸은 훌쩍 컸다.

"음악인의 눈으로 볼 때는 딸이 하나도 모자라지 않아요. 그런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땐 아직도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부녀가 함께 무대에 서기까지, 딸은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연주하는 도중에 혼나는 걸로 끝나는데, 저는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실수한 점을 지적받기도 했어요. 24시간 내내 스트레스가 떠나지 않았죠."

발차씨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건 7살 무렵이지만 재즈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은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음악인의 길을 선택하기 전까진 아버지는 친구 같은 분이었다.

"예전 같이 너그러운 아버지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저를 위해서는 무서운 아버지로 남는 게 좋다는 걸 알아요.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큰 선생님이니까요."

아버지가 딸에게 가르친 건 무엇일까.

"테크닉보다는 재즈인으로서의 마음 자세를 더 많이 배웠어요. 가벼운 대중음악이 아닌 진지한 예술로서의 순수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얼마 뒤면 딸은 음악을 더 공부하러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유랑 극단을 떠돌며 독학으로 색소폰을 익혀 대가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의 감회는 남다르다.

"더 나은 길을 찾아 떠나는 거지만 막상 보내려니 허전하네요. 다른 피아노 파트너를 구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되고요."

20일 오후 8시 30분 서울 현대백화점 삼성점에서 열리는 '재즈 잇 업 라이브-브라스 파티 인 더 나이트(1588-7890)' 콘서트에 딸 발차양이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 아버지와 음악으로 대화한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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