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태진아 "트로트 정상은 아무나 하나"

중앙일보

입력

1970년 어느날 서울 퇴계로4가 진양상가의 지하에 있던 일식당 '삼원' . 무명 가요 작곡가였던 서승일씨가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주방과 홀을 오가며 그릇도 나르고 청소도 하던 한 청년이 그의 눈에 띄었다. 흥얼거리는 노래 솜씨가 남다른 듯 했다.

"어이, 자네 내 밑에 와서 노래하지 않으려나?"

"에이, 제가 무슨 노래를 해요.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인데요. "

"나? 난 작곡가야, 작곡가!"

당시 열여덟 살이던 그 청년의 이름은 조방헌. 충북 보은군 탐북면 하장리의 '밭 한 마지기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네째로 태어나 '너무나 배가 고파' 열네살때 집을 떠났던 그는 그렇게 가수가 됐다. 바로 태진아(49.사진) 씨다.

태진아라는 예명은 이듬해 데뷔 앨범 '내마음 급행 열차' 를 발표하면서 서씨가 지어줬다.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탤런트 태현실, 가수 남진과 나훈아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것이다.

송대관.설운도씨와 함께 트로트 남자 가수 트로이카를 구축하고 있는 태진아씨가 가수 데뷔 30년을 맞아 기념 앨범 '잘났어 정말' 을 출시했다.

지난 23일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동부 이촌동 '진아기획'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최근 송사에 휘말린 '사랑은 아무나 하나' 표절 시비로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다.

'사랑은…' 은 주로 군대에서 많이 불려온 구전가요 '영자의 노래' 에 '작곡가 미상' 임을 밝히고 가사를 새로 붙인 노래다.

히트하자 뒤늦게 "내가 그 노래의 작곡가"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나타났고, 일부는 재판정까지 문제를 끌고 간 것이다. 태씨는 "어쨌든 모두에게 원한이 남지 않도록 공정하고 원만한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태씨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은 '잘났어 정말' 을 포함해 모두 스물다섯장. 74년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추억의 푸른 언덕' 으로 신인가수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슬럼프에 빠졌고 81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88서울올림픽이 그를 되살렸다. 해외동포 대표의 한 명으로 성화 봉송주자로 참여했고, 그 일을 계기로 컴백해 89년 발표한 노래가 바로 '옥경이' 다. 이 노래로 단숨에 톱스타 대열에 올라섰고 이후 '사모곡' '사랑은 아무나 하나'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정상을 지키고 있다.

30주년 기념 앨범에는 '잘났어 정말' 외에 '영덕 친구야' , 'KAL의 노래' 등을 담았다. 촬영중인 뮤직비디오에는 최불암.김용건.주현.김흥국.윤다훈씨 등이 출연한다.

태씨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밖에 다닐 수 없었던 한이 남아있다. 트로트 가수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전문 학교를 설립하는 게 평생의 목표" 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