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세 법안, 2년 만에 다시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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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치권 일각에서 잔혹하고 상습적인 성범죄자에 대해 외과 수술로 거세하는 제도(일명 ‘물리적 거세’)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나친 인권 침해라 시기상조라는 반대론도 거세다. 기원전 2세기 때 중국 역사가 사마천에게 집행됐던 궁형(宮刑). 현대판 궁형 논란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5일 성폭행 범죄자에 대해 ‘물리적 거세’를 집행하는 내용의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물리적 거세는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고환을 외과 수술로 제거해 성충동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박 의원은 형벌의 종류에서 징역형·사형과 함께 ‘거세형’을 포함하는 형법 일부 개정안도 제출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교화나 재활을 기대할 수 없고 ▶재범 발생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성폭력 범죄자에 한해 검사가 법원에 물리적 거세를 청구할 수 있게 했다. 또 이미 성폭력 범죄로 징역형 이상의 형이 확정돼 치료감호 또는 보호감호 중인 자에게도 거세 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박 의원은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출신이다.

 그는 “의료계에서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는 중단하면 더욱 강한 성충동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물리적 거세가 화학적 방법보다 안전하고 피의자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범위를 16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에서 19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로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성범죄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선 물리적 거세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트위터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제 봉건적 신체형까지 부활하는군요. 아주 저열한 포퓰리즘입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슬람 국가의 참수형, 싱가포르의 태형과 더불어 한국이 고환 제거형으로 세계 인권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을 쌓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물리적 거세가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할 수 없다”는 찬성론보다 “성범죄 예방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일부 법률·의학 전문가들도 반발했다. 인권 침해 소지가 크고 효과 입증이 명백히 안 됐다는 이유에서다. 김수웅(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물리적 거세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시키는 것을 넘어서 아예 불임으로 만들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중처벌과 남녀 성범죄자 간 불평등 문제도 논란거리다. 남성연대 성대기 상임대표는 “징역형에 이어 물리적 거세까지 하는 건 이중처벌인 데다 약 3%에 달하는 여성 성범죄자와의 불평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리적 거세 법안은 2010년 김수철 사건 발생 이후 신상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적이 있으나 인권단체의 반발로 통과되지 않았다. 이 제도를 시행 중인 체코와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도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전체 50개 주 중 캘리포니아·텍사스 등 5개 주에서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김민상·손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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