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으로 희망 순례 떠나는 '구인 개척 요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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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 정보를 찾아 나선 성영환(가운데)·김정우씨가 경남 창원시 웅남동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 인사 담당자에게 팸플릿을 건네주며 상담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용호동 노동부 창원고용안정센터. 허름한 셔츠 차림의 20, 30대 남자 5명이 구인서류 등이 가득 든 검은색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나선다. 이들은 노동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도입한 '구인개척요원'들. 두세 명이 한 조가 돼 기업체를 방문, 일자리를 찾아와 노동부 고용안정정보망(work.go.kr)에 등록하는 게 주임무다. 경기불황의 한복판에서 청년실업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조인 성영환(31)씨와 김정우(31)씨는 이날 활동지역으로 배당 받은 창원공단 내 기업체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20여 분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가장 먼저 간 곳은 LG전자 창원1공장. 정문에서 방문 목적을 설명했으나 "올해 사원모집은 끝났다"는 말을 듣고 돌아 나와야 했다.

김씨는 "대기업체는 문전박대하는 곳이 많다. 정문 통과도 어려우니 취업문턱은 얼마나 높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찾아간 곳이 중견업체인 금속회사. 이 회사 관리과장은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강성 노조 때문에 현장 인력은 10년째 뽑지 않고 필요한 부품은 외주를 준다"고 말했다. 구직난에 강성 노조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한 뒤 웅남동 제4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있는 56개 중소기업체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녔다. 그러나 사장들이 자금확보와 영업을 위해 외부로 뛰어다니느라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만난 베어링 생산업체인 동방기계 문진수(51) 사장은 "경기가 나쁜 데다 납품단가가 계속 낮아져 사람을 채용할 엄두를 못 낸다. 자동화 비율을 높여 인원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씨는 "그동안 만난 중소기업체 사장들로부터 현장 기술자 구하기가 어렵고 임금도 비싸 중국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러다가 10년 뒤에는 창원공단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였다"고 걱정했다.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활동 보고서를 낸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신들의 구직신청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다.

20여 통의 이력서를 내본 김씨는 "메일을 열어 봤지만 면접 보자는 곳은 한두 군데뿐이었다. 그래도 인터넷을 뒤지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6시가 되자 취업공부를 위해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 구인개척 요원=노동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공공근로사업의 하나로 1999년 도입했다가 2003년 구인개척사업으로 확대했다. 일당 2만2720원과 교통비 2000원, 식비 4000원 등 하루 2만8720원을 받는다. 최장 6개월까지 근무하면서 일자리 정보를 찾아내고 노동정책을 홍보한다. 본인들도 취업 신청을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10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창원=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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