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과욕과 방심은 친구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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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보(93~106)=과욕과 방심은 서로 통하는 사이다. 과욕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뇌가 경보 시스템을 발동하지 않는다. 방심은 방심이로되 일종의 ‘의도된 방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고수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다. 구리 9단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마의 사활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백진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하게 수를 읽지도 않았다(이런 대형 사활은 어차피 감(感)으로 꾸려 가는 것이다). 분명 의도된 방심이다.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노련한 심리 전법일 수도 있다.

 이런 미묘한 실타래를 단칼에 잘라 버린 것이 원성진 9단의 ‘뚝심’이다. 그는 급소를 연거푸 통타하며 순식간에 대마를 함몰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93은 밖으로 열린 유일한 출구였으나 94, 96으로 간단히 봉쇄됐다. 이젠 안에서 집을 내는 방법 외엔 없다. 수읽기의 핵심은 백△ 한 점이다. 이 한 점을 잡으면 바로 살지만 지금은 축도 장문도 안 된다. 101에 이어 103까지 들어간 것도 바로 그걸 노린 수다. 하나 105까지 와도 ‘참고도’ 흑1로 두는 수가 여전히 성립하지 않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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