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지구 구한다지만 나는 여러분 가족을 구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마친 밋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앤(오른쪽 두 사람),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와 부인 재나가 참석 대의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롬니 후보는 이날 미 전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지금은 ‘미국의 약속(promise of America)’을 복원해야 할 때”라며 12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는 등 ‘경제 대통령’을 자임했다. [탬파 로이터=뉴시스]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밤(현지시간) 밋 롬니 대선 후보의 수락 연설은 잘 짜인 대본과 같았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의 연설 말미에 롬니가 대회장에 입장하자 전당대회장인 탬파베이 타임스 포럼에 모인 3만 명의 청중은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그사이 3층으로 만들어진 연단의 맨 아래쪽으로 연설대는 옮겨져 있었다. 귀족적 이미지의 롬니를 보통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장치였다.

 롬니는 청중을 감동시키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무대를 배경으로 한 그의 연설은 여성과 일자리, 외교를 거쳐 미국의 미래로 이어지는 정교한 순서를 밟았다.

 연설 첫머리에 그는 낮은 목소리로 가족 얘기를 꺼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64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매일 장미 한 송이를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어머니는 장미가 없는 걸 알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걸 알았다.” 이 얘기를 하면서 롬니는 감정에 복받친 듯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청중들은 “밋, 밋, 밋”을 연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롬니는 “미국의 오늘을 일군 건 여성이다. 조용히 제 몫을 한 여성이 미국의 역사를 있게 한 주역”이라며 부인인 앤 롬니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의 이름을 열거했다. 또다시 기립박수가 터졌다.

 밤 10시36분부터 11시14분까지 38분간 계속된 롬니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일자리를 강조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1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뒤 “이건 로널드 레이건·빌 클린턴 전 대통령만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에 예고했던 ‘해야 할 일 목록(to-do list)’이었다. 이어 “미국에 지금 필요한 건 일자리다. 그것도 아주 많은 일자리며, 이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 뒤 일자리 창출을 위한 5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2020년까지 에너지 자립, 취업기술 교육, 새로운 무역협정의 추진 및 불공정 무역 대처, 균형예산, 중소기업 육성 등이었다. 이 대목에서 천둥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커다란 박수가 나왔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롬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은 미국을 실망시켰다”며 “미 국민의 6분의 1을 빈곤한 상황에 처하게 했고, 지금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일자리”라고 말했다. 특히 “이 나라의 대통령은 성공한 기업가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사업은 늘 성공하는 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해고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걸 딛고 일어나 세계적인 기업을 일궜고,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롬니의 연설 중 박수소리가 가장 큰 순간이었다. 그는 “결코 중산층의 세금을 늘리지 않겠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지구를 구하겠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나는 여러분 가족들을 위해 일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는 “미국의 성공을 위해 오바마가 성공하기를 바랐다”면서 “그러나 그는 실망과 분열만을 가져왔고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롬니는 또 “이(this) 대통령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자신의 탓을 남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재임하면) 4년 안에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 페이지를 넘길 때가 되었다”고 오바마 시대의 종언을 호소했다. 그런 뒤 “이제는 미국의 희망을 얘기할 때”라며 공화당 출신인 해리 트루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강한 미국 정책을 소개했다.

 외교 정책을 말하면서 롬니는 중국을 꼬집어 말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1조 달러를 빚지길 원하느냐”고 물어 청중으로부터 “아니오”란 답을 유도했다. 또 “오바마가 정유업계를 공격하는 바람에 에너지와 제조업들이 중국으로 쫓겨갔다”고 주장했다.

 38분에 걸친 연설 동안 롬니는 20여 차례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다만 기립박수의 대부분은 공화당의 열성 당원들이 앞장서 주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롬니 후보의 후보 수락 연설 기사를 다루면서 “11월 대통령 선거의 전선이 형성됐다”며 “롬니는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경제와 일자리를 선거전의 최일선에 놓았다”고 평가했다. 경제가 승부처란 의미였다. 9월 4~6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반격이 주목된다고도 적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