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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글로벌 리더십 포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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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더 성장해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대신하기는 힘들 것이다. 중국은 우선 내부 문제부터 신경 써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쇠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제 문제를 먼저 지적한다. 하지만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산업과 혁신, 신에너지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진짜로 위협하는 것은 국내정치다. 국내정치는 현재 미 역사상 가장 분열되고 파괴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전통적으로 실용주의를 자랑해 왔던 미국이 이제는 당파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정당들은 반대편이 건설적이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억누르려고만 하고 있다.

 미국은 국내정치에서 타협과 협력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대외정책에서도 같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외교정책 토론에선 더 강경한 쪽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정치적으로 힘을 얻는다. 이 때문에 미 외교는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방이 비난하면 더 험한 소리로 맞서는 거친 방식으로 변해 왔다.

 국내정치에 발목 잡혀 대외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흐르는 일은 중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국내정치 때문에 글로벌 책무를 잊을 정도다. 최근 중국은 이웃 동남아 국가들과 남중국해 영토를 둘러싸고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분쟁을 벌이고 있다. 분쟁이 확대되면서 중국과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는 더욱 꼬이고 있다.

 중국이 강경책을 펴는 것은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5억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네티즌의 일부가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글을 올리면, 나머지는 ‘정부가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집단 성토한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여론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블로거를 즉각 단속한다. 반면 대외 강경책을 주장하는 글에는 고마워한다.

 중국이 북한처럼 핵 보유 야망을 불태우는 나라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 누구도 북한의 행동을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정치의 볼모가 된 중국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가를 지급하게 하기는커녕 하나 마나 한 비난을 몇 마디 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러면서 북한이 곧 개혁을 할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덧붙인다. 2010년에 벌어진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한국민을 실망시켰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중국의 대외정책은 지도자들이 국내정치의 방향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수많은 중국인은 작은 나라지만 외세에 단호한 북한을 여전히 친구이자 동맹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중국 당국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얻을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인 신호를 북한에 보낼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진절머리 나는 행동을 계속 벌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 시리아 사태에서도 국내정치 때문에 다시 한 번 발목이 잡혀 대외정책의 방향을 똑바로 잡는 데 실패했다. 물론 누구도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나란히 손잡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중국이 자국 이익에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지속적으로 미국과 EU의 반대편에 서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니까 말이다. ⓒProject Syndicate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