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허 찌른 박근혜, 경선 사흘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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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오른쪽·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006년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제2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로 첫 행보를 시작했다. 대선 후보 수락연설문의 화두로 제시한 ‘국민대통합’을 행동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5·16 역사 인식 문제 등의 과거사 논쟁을 조기에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백기승 박근혜 경선캠프 공보위원은 “이념과 상관없이 모두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대변인 논평에 박 후보의 첫날 일정을 두고 ‘전격’이란 표현이 등장하고, 내부적으론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 감지될 만큼 박 후보의 행보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박 후보의 야당 출신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는 대선 후보 선출 사흘 전인 17일 확정됐다고 한다. 17일은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과 박 후보 역사관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공세가 거셌던 날이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이날 장준하 타살 의혹과 관련, “책임 있는 대선 후보라면 역사 앞에 당당해져야 할 것”이라고 박 후보를 압박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캠프 내부회의에서 한 인사가 “‘100%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부터 찾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나중에 이 아이디어를 보고 받은 박 후보가 "그렇게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 묘역 가운데도 봉하마을 방문은 ‘극비작전’처럼 진행됐다. 재임 중 탄핵사태에 이어 퇴임 후 검찰 수사 도중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은 현 여권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전직 대통령이다. 그래서 핵심 측근인 서병수 사무총장만 해도 21일 현충원에서 박 후보로부터 오전 8시20분쯤 봉하마을에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서 총장은 문재인 후보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박 후보가 오늘 2시 비행기로 봉하마을을 방문하려 한다”고 알렸고, 문 후보도 긍정적인 답변을 전달했다고 한다.

 박 후보와 노 전 대통령은 인연과 악연이 교차한 사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장학생 출신이다. 반면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그런 박 후보에게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초대 조각 과정에서 박 후보에게 통일부 장관직을 제안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박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의 갈등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가 대선 직전 복당했었다. 박 후보의 거절로 입각은 불발됐지만 당시만 해도 양측의 기류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박 후보가 야당 대표를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은 날카롭게 대립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박 후보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5년 9월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도 박 후보는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 “연정하자는 말은 앞으로 꺼내지 말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서거하자 조문을 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박 후보의 첫날 행보는 과거의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후보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8월 21일 현충탑에만 참배하고 오후엔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 당선 인사를 했다. 2002년 5월 11일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도 현충탑에만 참배했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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