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의 못 다한 이야기 <상>박태환 "물에서 나오니 방송사 기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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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출간되는 박태환의 자서전 『프리스타일 히어로』에는 세 번째 올림픽을 마친 그의 생생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일 열린 런던 올림픽 자유형 1500m 예선에서 역영하는 박태환. [런던 AP=연합뉴스]

중앙북스가 ‘마린 보이’ 박태환(23)의 이야기를 담은 『프리스타일 히어로』를 27일 출간한다. 박태환은 런던 올림픽에서 열흘간 겪었던 생생한 경험담과 지금의 그를 만들어온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중앙일보가 2회에 걸쳐 『프리스타일 히어로』에 담긴 박태환의 스토리 일부를 소개한다.

 박태환에겐 돌이키고 싶지 않은,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였던 2012년 7월 28일(현지시간). 자유형 400m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본인 이외엔 상상하기 어렵다. 박태환이 직접 말하는 ‘고난의 9시간’을 책 내용을 통해 재구성했다.

 ‘화가 났다. 허무하고 억울함에 치가 떨렸다. 소리라도 질러야 화가 풀릴 것 같은데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30분쯤 지나니 머릿속이 멍해지고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침대에 누웠지만 눈조차 감을 수 없었다.

400m 예선 실격 판정 후 전광판을 바라보는 모습. [런던 AP=연합뉴스]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 다시 번복되기까지는 4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4시간이 4년처럼 느껴졌다. 계획대로라면 이 시간에는 회복훈련을 마치고 가볍게 점심식사를 한 뒤 낮잠을 자며 컨디션을 조절해야 했다. 그러나 판정 하나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단념하고 200m에 집중하자며 방문을 나서던 오후 3시30분.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 극적으로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는 소식을 의무 트레이너 박철규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박샘, 아시안게임 금메달 같은 건 싫다며? 내가 올림픽 금메달 걸어줄게”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은 엉망이었다. 세심하게 컨디션을 조절해야 할 상황에서 몇 시간 동안 겪은 혼란은 경기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400m 결승에 맞춰 놓은 내 몸의 시간은 타이머 기능을 상실했다.

 초반은 괜찮았다. 100m 턴을 할 때 본능적으로 목표했던 53초 레이스가 됐다는 감이 왔다. 200m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300m를 턴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아직 100m를 더 가야 하는데….’ 쑨양(21·중국)이 치고 나오는 게 보였다. 여기서 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그리고 터치패드를 찍었다. 나는 쑨양보다 2초 가량 뒤진 3분42초06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물에서 나오니 방송사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웃어야지, 여기서 웃지 못하면 지는 거야.’ 첫 고비는 넘겼다.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있으니까. 그러나 방송 인터뷰까지 무사히 끝낸 나는 신문기자 인터뷰에서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인터뷰 내일 하면 안 될까요? 죄송해요.”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조금 후회된다. 더 의연할 수 있었는데.’

 자유형 400m는 이후 레이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에는 몸살 증세까지 왔다고 한다. 그래서 박태환은 1500m 경기를 앞두고는 선수촌이 아닌 가족들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부모님과 누나, 매형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1500m에서 4위를 했고 생애 세 번째 올림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박태환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의 수영 현실에 대해서도 제 살을 깎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박태환은 어린 시절 장이 꼬일 정도로 많은 훈련을 소화해 응급실에 4~5번 실려갔다고 한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라고 한다. 호주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선진 수영을 경험한 박태환은 “호주나 미국 선수들은 나처럼 기록을 내고 메달을 따기 위해 내몰리지 않는 것 같았다”며 “이제는 선수와 지도자가 함께 훈련법을 상의하고 연구해 가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했다.

물을 무서워하던 5살 꼬마 박태환이 수영장 바닥에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주우며 물과 친해진 일, 은사 노민상 감독을 만나 혹독한 훈련 속에 ‘천재적인 야생마’로 길들여지는 과정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앉은 자리에서 초밥 140개를 먹어치우는 ‘식사왕’ 박태환이 초밥 개수만큼이나 무식할 정도로 해낸 체력훈련은 지금의 박태환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정리=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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