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고 복잡하고 숨막히는... 소용돌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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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호 31면

주세페 시노폴리(사진)에게 뜨거운 관심을 가졌던 기억은 없다. 다만 2001년 4월, 그의 황망한 죽음이 안겨준 강한 인상, 정신과 의사이자 고고학자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 등이 뇌리에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심지어 리카르도 샤이나 리카르도 무티 같은 동시대 이탈리아 지휘자와 헷갈리기 일쑤였다.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지휘자는 첼리비다케, 귄터 반트 같이 그늘에 가려졌던 별이거나 재주꾼 타입으로는 번스타인이었다. 외곽의 인물처럼 느껴지면서도 독자적인 항성의 존재감을 안겨주는 라파엘 쿠벨릭, 바츨라프 스메타체크도 음반이 보이면 우선 손이 가는 인물이다. 아, 게르기에프나 사이먼 래틀도 있지. 특정 지휘자에게 애착을 느낀 경우는 대개 ‘아, 이 사람이 이런 의도를 갖고 포디엄에 서있구나’ 하고 음악적 지향이 교감될 때였다.

詩人의 음악 읽기 주세페 시노폴리의 ‘슈만 교향곡 제2번’

시노폴리는 선물로 찾아왔다. 사적으로 음반 딜러를 하는, 어쩌면 불법일지 모를 판매상에게 또 한 무더기 음반을 구입했는데 한 박스 보너스로 얹어준 게 시노폴리 교향곡 모음집이었다. 레퍼토리는 그야말로 교과서적 작품군이었다. 베토벤, 부르크너, 엘가, 말러 그런데 요 며칠 내내 시노폴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처음 걸었던 곡이 슈만의 교향곡 제2번이다. 이 곡은 슈만 스스로가 정신병 환자로서 썼다고 술회한 30대 중반의 작품인데 분열증이 찾아와 어렵게 요양 생활을 마치고 써나간 작품이다. 슈만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도입의 긴장감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좀 정신없는 전개 과정이 예사롭지 않아 감상 목록 앞자리에 있던 곡이다.

시노폴리가 만드는 사운드에 귀 기울이다가 곧바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완전히 역행침식이로군!’ 그러니까 계속해서 다음 마디가 이전 마디를 덮어 버리듯이 소리가 포개지는데 흡사 너울너울 흘러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강줄기의 몸부림 같았다. 정신없고 복잡하고 숨이 막힐 듯했는데 그건 의도이자 개성이었다. 평소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시노폴리의 기나긴 강의에 몸을 비틀며 하품을 참지 못했다는 회고담이 떠올랐다.

음악가 이전에 의사였고 정신분석학 박사였던 시노폴리는 악구 한 소절 한 소절마다 작곡가의 심리분석을 가하면서 연주자의 지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연습시간보다 더 긴 강의가 단원들에게는 고역이었으리라. 그러니까 저 정신없음, 복잡함, 숨막힘은 슈만의 정신세계에 대한 시노폴리의 해석이었다. 산산이 분열을 일으키는 정신세계는 이런 식으로 소용돌이친다는 것이리라. 나는 시노폴리를 통해 슈만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서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우선 슈만은, 아니 시노폴리는 멋졌다.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평범치 않은 것이 멋진 것이니까.

시노폴리는 지휘를 하다가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적인 사건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본다. “시노폴리는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고 있었다.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당신 때문에 나는 다시 돌아왔소’로 3막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때 오케스트라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여성의 비명 소리가 났다. 시노폴리가 쓰러진 것이다.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였다. 향년 54세.” 생전의 그는 양론에 휩싸인 존재였다. 매우 특별하거나 매우 서툴거나. 특이한 연주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오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저 시노폴리의 이지적인 해석과 사운드를 두고 어떻게 서툴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을까.

지성은 차분함을 안겨주고 감성이 격정을 유발시킨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지성은 대부분 격정적이었다. 혁명가, 작가, 사회참여적인 학자들이 그랬다. 스스로 고립의 시간을 만들어 산더미 같은 저작물들을 독파하는 격정, 토론의 공간에서 넘치는 사변을 제어하지 못하는 격정, 행동의 상황에서 신변을 돌보지 않는 격정. 지난 1970, 80년대에 우리는 그런 격정의 체험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성도 격정도 형편없이 조롱받는 세상이다. 격정의 열기를 밀어낸 바로 그 자리에 ‘강남스타일’의 흥청망청 싼티 나는 섹시코드의 열기가 세상을 휩쓴다. 어쩔 수 없으려니 한다. 그저 한밤에 틀어박혀 시노폴리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려니 한다.

시노폴리가 죽고 한 달 후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총리로 취임했다. 베를루스코니라니! 속이 터져 심근경색이 일어날 만했다. 지난 4년 반 동안 내 가슴도 터질 듯한 심근경색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정의로운 것, 지적인 모든 것이 조롱받는 세월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너무 컸다. 시장의 욕망이 옹립한 대통령 덕택에 정말로 세상은 강남스타일로 변해갔고 무력감에 허덕여야 했다. 아직도 밤이 깊다. 시노폴리를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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