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진국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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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MB) 대통령이 어제 광복절 67주년 연설을 했다. 대통령 연설 중에서 8·15 경축사는 취임사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임기 마지막 해 8·15 연설은 5년 임기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MB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남겼다. “저는 2008년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선진화 원년’을 선언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합니다.”

 MB는 ‘선진국 실현’ 약속을 지켰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어떤 점에선 맞는 말이다. 제일 맛있는 벌레를 먹으러 일찍 일어나는 새처럼 그는 열심히 일했다. 마지막까지 이런 근면은 계속될 것이다. 그는 연설에서 여러 수치와 실적을 언급했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했다. 주요국 중 일자리가 2008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나라는 한국과 독일뿐이다. 국가채무 비율도 양호해 다른 나라가 떨어질 때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두 차례나 올랐다. 한국은 세계 최정상회의인 주요 20개국(G20) 일원이 됐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세계 핵안보정상회의도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의 세계 파견 자원봉사단 규모는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다. 런던 올림픽에서는 세계 5위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섰다.

 이런 성취는 물론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이런 수치로만 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정치·경제·문화·도덕 그리고 의식에서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몇 개 종목 금메달이 아니라 전체 종목에서 균형 있게 높은 수준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주요 선진국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권력의 투명성과 겸손이다. 20세기를 지나 21세기 들면서 선진국에서 이미 권력은 소수가 누리는 대상이 아니라 집권세력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수단이 됐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그리고 가까운 일본을 보자. 최고권력자의 형제·친인척·친구·측근·핵심 부하가 모두 감옥에 가는 나라가 어디 있나. 선거캠프에서부터 각종 공직과 이권에 공을 들여 놓고 집권해서는 낙하산·회전문·봐주기로 권력 전리품을 챙기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집권당이 갈등과 부패 의혹으로 날을 지새우고, 야당과 반대세력은 무한대(無限大) 투쟁으로 권력과 국민을 조롱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대통령은 선진화의 완성을 외치지만 많은 국민은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수치가 좋다지만 양극화는 미국에 이어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4년 전 취임사에서 MB는 자신의 성공을 거론하며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는 한국은 ‘개인 인생의 선진화’가 어려운 나라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MB의 주장과는 달리 선진화는 다시 다음 대통령의 과업으로 넘어가게 됐다. 선진화를 이룰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지, 유권자는 올 12월 선택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