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해방공간, 좌-우 아닌 중간파-극단파 대립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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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역사학자 김기협씨는 1945년 8월에서 48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사를 3년에 걸쳐 책 10권에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즉 역사 자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좌나 우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해방일기 4
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439쪽, 2만1000원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생략과 요약의 기술이 각광받는다. 열 쪽짜리 정보를 한 줄로 요약해야 시쳇말로 ‘스마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역사학자 김기협(62·전 계명대 교수)씨는 3년째 이런 흐름을 거스르듯 살고 있다. 1945년 8월 1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간의 역사를 책 10권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방 직전부터 대한민국 건국까지의 역사를 촘촘한 일지 형식으로 되살린 『해방일기』(너머북스) 시리즈다. 지난해 5월 제1권이 빛을 본 이래 최근 제4권이 출간됐다. 1945년 8월부터 46년 8월까지 ‘해방 1년’이 네 권의 책으로 엮였다. 지난 25개월간 자택 집필실에서 자료조사와 집필에 매달려온 그는 내년 이맘 때 37개월의 장정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8·15 광복 67년을 앞두고 경기도 일산 대화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김씨는 “해방공간은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결정적인 갈림길이 됐다. 좌 아니면 우로 편을 가르고 역사를 보는 편협한 진영논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해방공간 3년을 10권에 담기로 한 이유는.

 “긴 글을 쓰면 거의 범죄행위로 여겨지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웃음). 엄청 미련을 떨 작정으로 시작했다. 요령 있는 글쓰기로 될 일이 아니니까. 좌우 이분법, 흑백논리 자체가 진정한 앎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 읽기는 요약만으로 안 된다. 요약될수록 왜곡이 심해진다. 직접 체험하지는 못할지언정 깊이 읽기, 세밀하게 읽기가 필요하다.”

 -이번에 출간된 4권은 46년 5월부터 8월까지만 다뤘다.

 “이 기간이 해방공간 3년 중 가장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시기다. 좌우합작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46년 5월에 시작됐다. 5월 직전까지는 미군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으로 이승만 등 극우 세력(반탁 세력)이, 왼쪽으로 박헌영 등 극좌파가 장악하고 있었고 중도 세력은 극도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런데 중도 좌파와 우파, 즉 중간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해방공간을 좌우 대립의 틀로만 바라보는 게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좌우대립은 표피적인 현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중간파 대 극단파(극좌와 극우)의 대립, 즉 ‘중극(中極)대립’ 구도가 두드러졌다. 중간파의 역할과 의미를 재평가해야 한다.”

 김씨는 각각 김규식(중도 우파)과 여운형(중도 좌파)을 중간파로 묶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비록 노력은 좌절됐지만, 파워게임에 주력한 극좌나 극우보다 의미있는 정치활동을 했다. 해방공간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들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그는 극좌와 극우를 가리켜 ‘적대적 공생관계’라 규정했다.

 -중간파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의 염원을 실현하려는 노력 아닌가. 그렇다면 계층의 이익에 집착한 극우파도, 이념에 매달린 극좌파도 ‘진짜’ 정치를 한 게 아니었다. 중간파는 당시 국민의 정치적 염원, 즉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변했다. 지금의 정치도 좌우 스펙트럼으로만 보려 할 때 민심을 대변하는 의미 있는 현상을 놓칠 수 있다.”

 -현재 집필은 어디까지 왔나.

 “제 7권째 분량인 ‘미소공위 결렬’(47.5~8)에 대해 쓰고 있다. 5~6권에서는 각각 대구폭동(46.9~12)과 이승만의 승리(47.1~4)를 다뤘고, 8,9권에서는 김구의 몰락(47.9~12)과 친일파의 득세(48.1~4)순으로 쓸 예정이다.”

 -당신은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정치적 진영 논리를 넘어서고 싶다고 했는데.

 “2008년에 『뉴라이트 비판』을 썼더니 ‘진보’라는 딱지가 붙었다. (웃음) 이번 작업하면서 ‘나는 역시 보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현실적인 제약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가능한 것들을 논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척결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현실적 조건을 인정하고 논해야 한다. ‘전범’수준의 일을 한 사람 외에는 극단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일지의 형식을 빌어 해방공간을 되살려 내는 작업은 그의 가족사와도 연결된다. 6·25 전쟁을 일기 형식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1913~1951) 전 서울대 교수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해방일기』 1권에 “아버지가 전쟁이란 상황에 맞닥뜨려서 역사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셨듯이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착수한다”고 썼다.

 그는 『해방일기』 집필작업을 가리켜 ‘서비스’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자신은 연구자의 입장이 아니라, 최근 연구의 주요 성과를 토대로 독자들을 역사 공간으로 이끄는 해설자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서로 역사의식 운운하며 정치인들이 다투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한마디 했다. “역사를 어느 쪽으로 왜곡하느냐 하는 질적 문제보다, 역사를 생각하는 분량 자체가 작다는 양적 문제가 지금 이 사회에서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역사를 진영 논리의 근거로만 보고, 인식 자체가 공백인 때 제일 하기 쉬운 게 서로 이런저런 ‘딱지’를 갖다 붙이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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