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국민 보호’ 기본조차 모르는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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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고문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해외에 수감된 우리 국민 전원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정작 수감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 수감된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첫 단계가 현황 파악이다. 정부가 수감 인원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자국민 보호의 기본조차 안 돼 있다는 뜻이다. 외교통상부는 3일 현재 해외에 수감된 우리 국민은 36개국 1169명으로, 이 중 중국 내 수감자는 34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7월 23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 1780명 정도가 수감돼 있으며 이 중 619명이 중국에 수감된 인원”이라고 보고했었다. 불과 2주일 사이에 수감자는 34%, 중국 내 수감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통계 집계상의 기술적 문제로 인한 착오일 뿐 실제 관리하는 수감자를 빠뜨린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감자가 풀려났을 경우 외교부의 영사 전산 시스템에서 ‘석방’ 버튼과 ‘종료’ 버튼을 모두 눌러야 수감자 집계에서 빠지는데 담당 영사들이 ‘종료’ 버튼만 누르다 보니 수감자 숫자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005년 도입한 영사 전산 시스템이 엉터리라는 것과 외교부 직원들의 업무 태만을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김씨 고문 사건이 없었다면 이런 오류가 있는지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 아닌가.

 해외 거주 동포가 700만 명이고, 해외여행에 나서는 우리 국민만 한 해 1300만 명이 넘는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 업무가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위급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도움을 청해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관 직원들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영사 업무를 내심 하찮은 일로 여기는 외교관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부실하고 무성의한 영사 관리로 인한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호들갑을 떨며 뒷북을 치는 구태를 외교부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